이재용 7년전 골드만삭스 회장 만난 이유…檢 주장과 달랐다

입력 2021-11-12 10:14   수정 2021-11-12 10:16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이 2014년 12월 골드만삭스 고위 임원을 만나 반도체, 스마트폰 등 삼성의 핵심사업 투자전략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부회장이 당시 경영권 승계 등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골드만삭스 임원을 만났을 것이란 관측과는 사실관계가 다른 것이라 관련 재판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12일 재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전날(1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혐의' 재판에서 이 부회장 변호인 측은 이같은 내용의 영문 이메일을 공개했다.

해당 이메일은 2014년 12월8일 미국 골드만삭스의 진 사익스 당시 공동회장이 이날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정형진 골드만삭스 한국대표 등 3명에게 보낸 것이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쓰러진 직후 '홀로서기'에 나선 이 부회장의 고뇌와 경영철학, 사업구상 등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라 주목된다.

사익스 당시 회장은 글로벌 투자은행(IB) 업계에서 정보기술(IT)과 이동통신, 미디어 분야 최고 전문가로 정평이 나 있던 인사. 미국 애플과 스티브 잡스를 전담했던 뱅커로 유명세를 탔다. 이 부회장을 알게 된 것도 잡스의 소개 덕분으로 알려졌다.

사익스는 정 대표 등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제이(이재용 부회장)가 오늘 저를 만나러 왔다"면서 대화 내용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전달했다.

우선 사익스는 이 부회장과의 대화 대부분이 삼성전자 사업 전반에 관한 것이었다고 소개했다. 고성능 부품, 디스플레이, 폼팩터, 카메라 기술 등 하드웨어 측면에서의 제품 차별화,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위탁생산) 등 비메모리 사업 전략, 소프트웨어 분야의 투자 확대, 애플과의 지속적 공급 관계 등에 대해 집중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당시에도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의 핵심 전략에 대해 고심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부회장의 이같은 고민은 실제로 갤럭시 폴더블폰 성공,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 선언,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등 소프트웨어 발전전략, 애플에 대한 핵심부품 공급 등으로 가시화됐다.


이 부회장은 사익스와의 면담에서 이른바 '선택과 집중' 경영전략을 거듭 강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부회장은 당시 추진하던 방산, 화학 분야 등 비핵심 사업 정리를 언급한 뒤 "이를 위해 열심히 노력한 것 때문에 한국 정치인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다고 한다"면서도 "핵심 사업에 집중하는 접근 방식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고 말했다"고 사익스는 전했다.

이 부회장은 "주주들과 다른 사람들도 (핵심 사업 집중을 통해) 소유 구조를 더욱 투명하게 하려는 우리들의 노력을 결국 인정해줄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당시 상속세 관련 언급도 남겼다. 사익스는 "그(이재용)는 비록 한국 상속세와 미국 세금의 차이점에 흥미를 보이기는 했지만 부친께서 돌아가실 경우 발생할 세금 문제에 대처할 준비가 잘 돼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눈 시점은 이건희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지 7개월밖에 안 된 시점이었으나, 상속세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된 상태로 큰 고민거리가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

이 부회장 측 변호인이 해당 이메일을 공개한 것은 이 부회장이 골드만삭스 측 인사들과 만난 이유가 검찰 주장처럼 경영권 승계나 지배구조 개편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반적 사업 현안과 미래 전략에 대한 조언을 받기 위한 차원이었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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