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병이 유럽 전역을 점령하는 데 수년이 필요했지만, 코로나는 몇 주면 충분했다. 운송 네트워크의 발달 정도가 그 원인이다. 프랑스 마르세유에 흑사병이 처음 상륙했던 1347년과는 달리 코로나19가 활동을 시작한 2020년은 빠르고 효율적인 운송 네트워크가 존재했다. 엄밀하게 흑사병의 병원균은 세균이고, 코로나19는 바이러스지만 적절한 운송수단만 있다면 퍼져나가는 방식은 모두 동일하다.
강한 유대와 약한 유대
하지만 흑사병과 코로나19의 확산 양상은 사회학자 그래노베터의 강한 유대와 약한 유대의 개념으로 살펴보면 조금 달리 해석할 수 있다. 강한 유대란 가까운 친구나 가족과 같이 신뢰가능한 유대 관계를, 약한 유대란 가끔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 형성된 관계를 의미한다. 강한 유대는 14세기 흑사병의 확산 통로였다. 그 이유는 단지 당시에는 약한 유대가 많이 존재하지 않았던 탓이다. 대다수 사람은 서로 잘 아는 소규모 공동체에서 평생을 보냈다. 공동체 밖의 세상은 낯선 곳이었다. 정체와 느린 기술과 강한 유대가 큰 특징인 세계였다. 하지만 현대의 운송과 통신기술은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오늘날 우리는 의식하지 않더라도 늘 세계 각지의 사람들과 접촉한다. 무작위로 연결된 이들과 지속적으로 사회적 유대가 형성되진 않지만, 약한 유대는 코로나19와 같은 바이러스를 전 세계로 확산시키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그래노베터는 강한 유대로 연결된 사람들은 분명 중요한 사람이지만, 대규모 확산의 대부분은 약한 유대로 연결된 사람들을 통해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그 원인의 중심에는 중복성이 있다. 누군가 새로운 생각을 전파하려고 시도할 때 강한 유대 내의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일 가능성이 높다. 어떤 생각이 순전히 강한 유대를 통해서만 퍼져나간다면 아주 멀리 나아가지 못하고 동일한 공동체 내에서 쳇바퀴 도는 데 그칠 것이다. 마치 이미 개종한 사람에게 전도하는 것과 비슷하다. 반면 약한 유대는 그 영향력의 범위가 매우 넓다. 개인적으로 결코 만날 일이 없지만 우리의 생각을 새롭게 느끼는 다양한 사람으로 이루어진 광대한 네트워크 덕분에 약한 유대는 훨씬 많은 사람을 만나는 통로가 된다.
강한 유대를 통한 확산
하지만 변화를 위한 사회적 노력은 약한 유대를 통해 확산되지 않는다. 페이스북, 스카이프와 같은 새로운 기술은 물론이고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와 같은 현대의 사회 운동도, 동성 결혼이나 마리화나 합법화 등의 사회 규범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소셜 테크놀로지였던 트위터도 강한 유대를 중심으로 확산되었다. 즉, 코로나19가 아닌 흑사병처럼 퍼져나갔다. 트위터 가입자가 국지적으로 증가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는 의미다. 트위터는 2006년 8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지진이 일어나면서 인기를 얻었다. 규모 3.6의 지진은 경미한 것이었지만, 언제 다시 발생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샌프란시스코 사람들은 트위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상황을 공유했다. 이렇게 샌프란시스코 전역으로 확산이 시작된 트위터는 캘리포니아주 시골 지역을 가로지르며 팽창해갔다. 흥미로운 것은 지역적 성장을 보이던 트위터는 갑자기 대륙을 가로질러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확산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는 강한 유대가 아니라 약한 유대를 통한 확산처럼 보였다. 하지만 다시 흑사병처럼 매사추세츠주의 보스턴 교외와 주변 도시를 중심으로 한 국지적인 확산이 시작되었다. 불가사의한 확산 패턴이지만, 뜯어보면 여전히 핵심에는 강한 유대가 있었다. 케임브리지에는 매사추세츠공대와 스탠퍼드, 하버드, 버클리, 보스턴대가 위치하며 많은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 중 많은 수는 보스턴에 남아 첨단 산업단지에서 일했지만, 또 많은 이들은 꿈을 찾아 서부의 실리콘밸리로 떠났다. 즉, 강한 유대를 공유한 사람들이 두 지역으로 흩어진 것이다. 일반적으로 강한 유대는 물리적 근접성을 기반으로 형성된다. 통신기술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이들 두 집단의 강한 유대가 물리적 제약으로 유지되기 어려웠겠지만, 기술의 발달로 공간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강한 유대가 대륙을 가로지르며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믿음과 행동의 전파 경로
트위터의 사례를 통해 단순한 정보 전염과 행동이 전파되는 경로는 확연히 다르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트위터의 성장 패턴은 강한 유대 특유의 확산 과정을 보여준다. 즉, 영향력의 범위가 아니라 효율적인 확산의 걸림돌이었던 ‘중복성’을 통해 확산되었다는 점이다. 바이러스는 같은 사람을 두 번 감염시키지 않기 때문에 바이러스 전파에서 중복성은 비효율적 요인이다. 하지만 새로운 개념의 경우 강한 유대로 이루어진 자신의 네트워크 안에서 두 명, 세 명 혹은 그 이상의 사람에게 노출되는 경험을 통해 개념이 규범으로 변화한다. 그리고 이는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을 변화시켜 결국 행동을 바꾸게 된다.
디지털 경제 곳곳에서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야기 많지만, 정작 네트워크가 어떻게 확장되는지에 대한 논의는 부족한 듯하다. 비즈니스는 물론이거니와 정책 역시 확산되지 않으면 생명력이 반감될 수밖에 없다. 확산의 물리적 제약이 그 어느 때보다 약한 오늘날, 강한 유대와 약한 유대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 네트워크 설계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