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간의 골프인생이요? '잘 버텼다'라고 정리하고 싶어요. 상금왕이 됐다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기도 하고 기복이 심했는데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올라가며 잘 버텼다고, 저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12일 강원도 춘천 라비에벨 올드코스(파72·6815야드)에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시즌 최종전 SK쉴더스·SK텔레콤 챔피언십 1라운드를 마친 김하늘(33)은 추위에 빨갛게 언 얼굴로 "너무 추워서 힘들었다"면서도 환한 미소를 보였다. 이 대회는 김하늘이 15년간의 투어 프로 생활의 마침표를 찍는 고별전이다. 강한 추위와 거센 바람 탓에 5오버파라는 아쉬운 성적을 냈지만 "내일 아주 많이 잘해야겠죠?"라며 긍정적인 모습을 잃지 않았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해온 김하늘은 지난달 깜짝 은퇴를 발표해 팬들을 놀라게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골프채를 잡은 그는 2007년 KLPGA 정규투어에 데뷔해 신인왕을 차지했다. 2011년, 2012년 연속 상금왕을 차지하며 승승장구하며 KLPGA투어에서 통산 8승을 쌓은 뒤 2015년 일본으로 향했다. 일본에서만 6승을 거둔 탄탄한 경기력과 화사한 미모는 일본팬들의 마음도 사로잡았다.
이날 경기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난 김하늘은 "2년 전부터 은퇴를 고민해왔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코로나19가 터진 뒤 한국과 일본을 예전처럼 오갈 수 없으니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어졌어요. 골프장에 가는게 예전처럼 즐겁지 않았고 경기력도 떨어진다고 느꼈습니다. 고민이 길었지만 결국 은퇴를 결심했지요."
그는 선수로서의 자신에 대해 "멘탈이 좋진 않지만 연습량으로 극복해 우승을 거둘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주니어 때는 아무도 없을 때까지 연습하는게 재밌었어요. 아침 일찍 아무도 없을 시간에 연습하고, 밥먹고 연습하는 그런 순간을 즐겼지요. 그랬기에 바닥을 찍어도 흔들리지 않고 버텼던 것 같습니다." 그는 "지금 다시 그렇게 하라면 못할 것 같다"며 웃었다.
김하늘은 커리어의 정점에서 일본 투어에 도전했던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한국에서 계속 활동했다면 이미 벌써 은퇴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한국 여자골프는 유독 수명이 짧다.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하는 홍란도 35세로 아직 30대 초중반이면 대부분의 선수들이 선수생활을 마감한다.
김하늘은 "이번 대회에서도 그렇고, 한국에 있으면 내가 너무 연장자가 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선두그룹은 세대교체가 되긴 했지만 여전히 선배들이 상위권에서 좋은 경기를 펼치고 있습니다. 선배들이 버텨주니 저희도 견딜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베테랑들이 너무 빨리 빠져요. 제가 이 자리를 지키는게 후배들에게 미안한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그는 KLPGA 투어가 베테랑들이 활동할 수 있는 여지를 좀 더 열여줘야 한다는 쓴소리도 내놨다. 그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나 일본 투어는 상금왕이나 우승 경험이 있으면 가끔이나마 대회에 나올 수 있는 다양한 시드권이 있지만 한국은 그런 시드권이 전혀 없다"며 "그러다보니 선배들이 가끔이나마 투어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 세대교체가 너무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제 김하늘은 골프인생 2막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투어를 그만두는 것이지 골프를 접는 것은 아니다. 저는 골프인"이라며 "이제 시간 여유가 많이 생기니 팬들과 공유할 수 있는 재밌는 콘텐츠를 준비해보겠다"고 말했다.
춘천=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