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대만의 군사긴장이 높아지면서 일본에서는 '대만이 중국에 병합될 경우'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분석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아키타 히로유키 니혼게이자이신문 코멘테이터(전문 논설위원)는 지난 10일 칼럼을 통해 "중국이 대만을 병합하면 섬 전체를 군사기지화해 제1열도선을 무력화하고 동남아시아와 남태평양의 패권을 쥐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나카야마 아쓰시 코멘테이터는 최근 칼럼에서 "TSMC의 일본 구마모토현 공장 신설도 사실은 일본 정부의 반도체 공장 유치가 아니라 미국이 TSMC의 생산능력 일부를 대만에서 일본으로 피난시킨 것"이라는 일본 재계의 목소리를 소개했다.
대만이 미국 및 유럽과 관계를 강화할 수록 중국의 군사위협은 높아지고 있다. 지난 10월 한 달간 중국 군용기 200대가 대만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했다. 대만이 진입횟수를 집계해 발표한 작년 9월 이후 최대규모다.
지난 3월 필립 데이비슨 당시 미국 인도태평양사령관은 미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중국이 6년 이내에 대만을 침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같은 달 미국 NBC방송은 안보전문가를 인용해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는 상황을 가정한 워게임에서 미국이 패배할 확률이 높다고 보도했다.
미국과 아시아 각국의 정부 관계자와 안보전문가들은 중국이 대만을 강제병합하면 지정학적 판도가 완전히 뒤바뀔 것으로 우려한다.
마쓰다 야스히로 도쿄대 교수는 "대만 병합은 곧 미국 시대의 종언을 의미한다"며 "시진핑 정권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시아·태평양 전체에서 패권을 쥐려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시 정권의 대외확장은 남지나해에 그치지 않고 동남아시아와 남태평양으로 범위가 확대돼 일본도 중국의 패권 밑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이 대만에 군사기지를 설치하면 규슈에서 오키나와와 대만, 필리핀을 잇는 제1열도선을 뚫고 태평양에 진출하기 쉬워진다. 핵미사일을 탑재한 원자력잠수함이 태평양에서 활동반경을 넓히면 미국의 '핵우산'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대만의 3000m급 산 정상에 레이더기지를 설치하면 중국군은 아시아·태평양의 미군과 자위대의 움직임을 세세하게 파악할 수도 있다.
엘브리지 콜비 전 미 국방부 부차관보는 "중국이 대만을 병합하면 틀림없이 섬 전체를 군사화할 것"이라며 "일본의 난세이제도(규슈 남부에서 대만 북동부에 걸친 일본령 섬들) 뿐 아니라 필리핀도 취약해 진다"고 말했다.
세계 첨단 반도체의 90%를 생산하는 대만의 기술력이 중국에 넘어가면 세계 하이테크 경쟁의 향방도 바뀔 수 있다.
일본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중국이 오키나와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2013년 5월 일본의 류큐(오키나와) 귀속 문제는 미해결이라는 학자의 논문을 실으며 "역사적으로 미해결 지역인 오키나와 문제를 다시 의논해야할 때가 왔다"고 주장했다.
일본은 1879년 오키나와를 병합했다. 중국이 오키나와 문제를 거론한 건 오키나와에 주둔한 미군을 흔들기 위해서라는 분석이다. 일본 안보담당자는 "대만을 병합한 중국에 오키나와에 주둔한 미군은 눈엣가시"라며 "중국이 오키나와 귀속논쟁을 일으켜 미군 주둔의 정당성을 흔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중국의 대만 병합은 어떤 방식으로든 일본에 악몽이라고 아키타 코멘테이터는 진단했다. 그는 "대만 해협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일본 일부도 전장이 되고, 일본이 전투에 직간접적으로 간여하면 막대한 희생이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본의 최서단 영토인 요나구니섬은 대만에서 불과 100㎞ 떨어져 있다.
이 때문에 아키타 코멘테이터는 "일본 정부가 대만병합의 위험을 정밀하게 평가해 유사시 일본이 '무엇을 어디까지 할 지'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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