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만896송이 달맞이꽃과 함께…부산서 울려퍼진 캐나다 노병의 목소리 [송영찬의 디플로마티크]

입력 2021-11-14 16:40   수정 2021-11-14 18:53

“우리의 소중한 청춘의 나날들은 우리가 사랑으로 구한 마음들을 통해 여기에 거룩하게 지켜집니다.”

지난 11일 부산 대연동 유엔기념공원. 6·25전쟁 당시 캐나다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참전용사 빈센트 커트니씨가 낭독한 시 ‘소중한 청춘의 나날(Our Days of Precious Youth)’의 일부분입니다. 소중한 청춘의 나날은 커트니씨가 낯선 땅에서 목숨을 바친 자신의 전우들에게 바친 시입니다. 캐나다의 노병(老兵)은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목숨바친 전우들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진 비석 앞에서 시 한 구절 한 구절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11월 11일 11시, 전 세계 부산 향해 묵념
많은 사람들에게 ‘빼빼로데이’로만 알려진 11월 11일은 ‘유엔군 참전용사 추모의날’입니다. 2007년 커트니씨의 제안으로 시작됐습니다.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목숨바친 유엔군 참전용사들을 잊지 말자는 날입니다. 커트니씨는 3년 전 한 언론 기고문에서 “우리는 언제까지나 부산을 향하여(turn toward Busan) 있을 테니 한국도 부디 우리에게 등을 돌리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오전 11시에 맞춰 유엔공원 위로는 공군 블랙이글스가 날아올랐습니다. 부산시 전역에는 1분간 사이렌이 울려 퍼졌고 유엔군 전몰장병을 추모하기 위한 묵념이 진행됐습니다. 전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가 있는 부산을 향해 전 세계가 함께 묵념하자는 의미의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 추모 행사입니다.

올해 행사는 영국군 무명용사 3명의 유해 안장식이 먼저 진행됐습니다. 올해 이곳에 안장된 무명용사들은 2016~2017년 경기 파주시 일대에서 발굴됐지만 끝내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분들입니다. 안장된 이들의 관 위로는 지난 70여년 간 묻혀있던 파주의 흙이 뿌려졌습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이날 행사에 감사 영상을 보내 “6·25전쟁은 참혹했던 투쟁이었지만 역경을 이겨내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할 수 있게 시간을 벌어줬다”며 감사의 뜻을 표시했습니다.
전몰장병에 헌화된 4만896송이의 달맞이꽃
이날 추모식에는 마르타 루시아 라미레스 콜롬비아 부통령도 참석했습니다. 콜롬비아는 중남미 유일의 6·25전쟁 참전국입니다. 연인원 5100명이 참전해 213명이 지구 반대편 한반도에서 목숨을 잃고 448명이 다쳤습니다. 한국이 콜롬비아와 수교한 해는 1962년. 공식 수교도 하지 않은 나라의 자유를 위해 지구 반대편에서 5000명이 넘는 젊은 장병들이 목숨을 바쳐 싸운 것입니다.

라미레스 부통령은 추모식에서 유엔군 전사자와 실종자 4만896명을 상징하는 4만896송이의 달맞이꽃을 헌화했습니다. 달맞이꽃의 꽃말은 ‘기다림’. 끝내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모든 전몰 장병에 대한 기다림을 표현한 것입니다.

행사가 끝난 뒤 유엔공원에는 애국가와 콜롬비아 국가가 연주되는 가운데 한국-콜롬비아 우호기념비가 제막됐습니다. 올해는 콜롬비아의 6·25전쟁 참전 70주년입니다. 콜롬비아는 이같은 특별한 인연을 보여주듯 지난 8월 두케 마르케스 콜롬비아 대통령의 방한에 이어 11월 라미레스 부통령까지 한국을 찾았습니다. 황기철 국가보훈처장은 지난 5월 콜롬비아를 방문해 참전용사들에게 마스크 1만장을 전달하고 오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6·25전쟁 참전국 대상 ‘보훈 외교’는 한국 외교의 큰 축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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