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이후 한국의 가계부채 증가율은 18%로 홍콩(24%)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고승범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2일 열린 제191차 한경 밀레니엄포럼 웹세미나에서 “과도한 신용에 의해 촉발되는 버블(거품)에는 정부가 사전 대응해야 한다”며 가계대출 총량규제의 불가피성을 이같이 강조했다. 포럼 토론자들은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풍선 효과’나 대출금리 급등과 같은 부작용을 보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고 위원장은 “LTV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의 낮은 수준, 그리고 고신용자 대출 비중이 75%에 달하는 점 등을 고려하면 금융회사의 부실 가능성은 작은 게 사실”이라면서도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너무 가파르기 때문에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이어 “내년 미국 중앙은행(Fed)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과 기준금리 인상 등이 예상보다 빨라질 가능성도 있다”고 강조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풍선 효과’나 ‘규제의 역설’ 등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을 촉구했다. 강 교수는 “예금금리는 거의 그대로인데 대출금리만 계속 올라가고 있어 결과적으로 은행 배만 불리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며 “저축은행 등에서는 가계대출이 안 되니 개인 차주에게 사업자 등록을 유도해 편법으로 대출을 내주는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실수요자들조차 돈 빌리기가 어려워져 2금융권이나 사금융으로 밀려나는 등 건전성이 오히려 악화될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고 위원장은 “최근 언론에서 금리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지만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금리)에 정부가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당국자로서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다”며 “다만 앞으로도 금리 움직임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답했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실수요자의 정의와 전세제도 자체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김 교수는 “고 위원장은 과도한 신용에 따른 버블에 사전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전세대출에선 그 기준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며 “독특하게 한국에서만 운영돼 온 전세제도의 유효성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할 수밖에 없는 시기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고 위원장도 이에 대해 공감을 표시한 뒤 “최근 늘어나는 가계 부채의 상당 부분이 전세대출과 집단대출 등 실수요자 대출에서 발생하고 있다”며 “하 교수 지적대로 전세대출의 국가 보증이 꼭 바람직하다고만 볼 수 없다”고 인정했다. 고 위원장은 “그럼에도 전세대출은 (필수재인) 주거 안정성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기 때문에 규제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올해 총량규제에서 전세대출을 예외로 둔 것도 이 같은 측면을 감안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고 위원장은 이에 따라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이 당초 목표인 6%에서 7% 중반까지 높아질 것으로 추정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행 금융 규제의 불확실성이 커 정책 효과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DSR 규제만 보더라도 단 6개월 만에 내용과 일정이 크게 바뀌었다”며 “이처럼 불확실성이 커지면 정책 효과가 반감되는 것은 물론 실물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또 “앞으로 정책을 펼 때 가능하면 경제주체들이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주고 발표 전이라도 ‘시그널링’을 많이 해달라”고 당부했다.
고 위원장은 “8월에 취임 직후부터 가계부채 보완대책을 만들겠다고 예고했고 (두 달 만인) 10월에 발표했다”며 “그래도 갑작스럽다는 지적이 많은 만큼 앞으로 유념할 것”이라고 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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