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준의 인문학과 경제] 보이지 않는 손, 은밀한 손

입력 2021-11-14 17:21   수정 2021-11-15 01:03

‘보이지 않는 손.’ 이것이 시장경제의 작동 방식을 설명한 애덤 스미스의 은유적 표현임을 이 지면의 독자 중에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반면에 이 은유의 역사는 다소 생소할 수 있다.

스미스가 《국부론》보다 17년 전에 출간한 《도덕 감정론》에 ‘보이지 않는 손’이 먼저 등장한다. 맥락은 유사하다. 부유한 지주는 저택에 들어앉아 온갖 사치와 과소비를 한다. 그의 까다로운 입맛을 채워주기 위해 다양한 서비스와 생산직 일자리가 생겨난다. 그는 일거리를 만들어줌으로써 자신의 부를 여러 사람에게 나눠준다. ‘오만하고 매정한’ 지주는 의도치 않았지만,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모든 이에게 균등하게 지주의 재산을 나눠준 것과 마찬가지 결과를 낳는다.

《도덕 감정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 비유를 사용한 뒤 스미스는 연이어 ‘섭리’를 거론한다. 섭리는 큰 영지를 소유한 이들에게 땅을 몰아주면서도 이렇듯 물려받은 땅이 없는 이들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는다.

섭리를 ‘손’에 비유한 가장 오래된 예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5세기)이다. 그는 하느님의 창조를 설명하며 ‘하느님의 손’은 ‘보이는 것들을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만들어낸다’고 했다. 17·18세기에 들어와서도 자연의 조화나 역사의 전개를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이뤄낸 결과라고 말하는 사상가들이 종종 있었다. 당장은 크나큰 재앙인 줄만 알았던 것이 예상치 못한 축복을 가져왔을 때, 전혀 생각하지 못한 생명체의 질서를 새로 발견했을 때, 그것은 ‘보이지 않는 절대자의 손’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식의 표현들을 사용하곤 했다. 스미스의 독창성은 ‘보이지 않는 손’이 늘 내포하고 있던 섭리의 의미를 경제 영역에 적용했다는 데 있다.

대한민국은 지난 4년 반 동안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힘겹게 자유 시장경제 체제를 지켜냈다. ‘보이지 않는 손’의 섭리적 배려 덕분이다. 각 경제 주체는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기술한 대로 ‘오로지 자신의 이윤만을 도모했을 뿐이지만, 어떤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그가 의도한 바에는 없던 목표를 증진’하는 데 일조했다.

정치 권력을 잡은 자들이 삼성의 총책임자를 감옥에 가둬두려 열중할 동안, 개인 투자자들은 삼성전자 주식을 샀다. 이들은 주식을 사서 차익을 실현하고자 했지, 삼성을 지원해서 대한민국 경제를 살리려는 애국적 목표를 추구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결과 삼성을 통해 대한민국 전체의 ‘국부’가 증가했다.

좀 더 뼈아픈 예도 있다. 국가의 무모한 규제와 무지막지한 방역정책으로 생존의 기로에 선 음식점 주인들. 오직 자신과 가족의 이익을 어떻게든 지켜보려, 그 힘든 상황 속에서도 식당 문을 닫지 않고 버텨낸 분들이다. 이들은 식당으로 오지 못하는 손님에게 음식을 포장·배달해주는 길을 찾아냈다. 그 결과 공급자와 수요자를 연결하는 오토바이 배달사업이 활성화됐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을 언급하며 곧장 다음과 같은 단서를 덧붙인다. “자신의 이익만 추구함으로써 사회의 이익을 실제로 그것을 의도적으로 도모했을 때보다 더 효과적으로 증진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나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사업을 한다고 나서는 자들이 사회에 실질적 기여를 하는 법을 전혀 보지 못했다.”

전혀 보지 못했다? 사뭇 단호하다. 스미스가 살았던 18세기 영국은 몰라도, 공정함을 자랑하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예외가 있지 않을까? “공공의 이익을 위한 사업을 한다”는 업자들은 ‘그렇다!’라고 외칠 것이다. 이들은 ‘정의와 공평’을 외치며 요란하게 호객 행위를 한다. 그러고는 제도의 틈새와 권력의 속살을 더듬는 은밀한 손으로 뒷돈을 챙긴다. 챙긴 돈은 은밀한 손길들을 거쳐 교묘히 숨겨놓는다.

혹시나 이들의 은밀한 손길을 눈치채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들리면, 수치스런 역사의 귀신을 불러내 ‘토착왜구’와 ‘친일파’라는 비난을 오물처럼 투척한다. 공익 장사꾼을 대놓고 비판한 스미스도 지금의 대한민국에 살았다면 이 오물 세례를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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