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두부 제조업계에 따르면 경기도의 한 슈퍼마켓은 최근 진열대에서 두부가 자취를 감췄다. 지역 두부 제조업체들이 콩이 없어 두부를 제때 공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콩 부족으로 강원 충북 경북 등에선 문을 닫는 두부 제조업체가 속출했다. 한 두부 제조업체 사장은 “전국적으로 20~30개 업체가 휴·폐업한 상태”라고 말했다.
당장 콩이 부족해지자 급기야 수입 대두분(가루)으로 두부를 만드려는 업체들도 늘었다. 두부 제조업계 관계자는 “콩이 없어 대두분이라도 확보하려는 업체들이 생겨났다”며 “유통기한이 훨씬 긴 대두분 사용이 늘어나면 일반 두부 보다 낮은 품질의 두부가 대량 유통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내 두부의 80%는 미국 캐나다 등에서 수입한 콩으로 만든다. 콩은 정부에서 수입관리 품목으로 지정해 공급을 통제하고 있다. 정부는 연간 20만t의 콩을 수입하는데, 이 중 68.5%는 저율 관세로 수입한 물량이다. 대부분 전년도 배급 실적에 따라 두부 제조업체에 ‘직접 공급(직배)’하고 일부는 ‘최고가 입찰(직배 공매)’로 공급한다. 나머지 31.5%가량은 수요업계가 직접 입찰을 통해 각국에서 수입권을 확보하는 ‘수입권 공매’ 방식으로 들여온다.
올해 정부의 수입콩 직배 물량은 13만2000t으로 5년 전(2016년, 16만2000t)에 비해 18% 줄었다. 한국연식품협동조합연합회 조사 결과 정부의 수입콩 직배 물량은 실제 사용량 대비 올해 12.9% 부족한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가 해마다 수입콩 직접 공급을 줄인 것은 국산 콩을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국산 콩이 수입콩 대비 4~5배가량 비싼 데다 가을장마 등 기후 변화에 따른 작황 부진이 잦아 수입콩 두부를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두부 제조업계의 지적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수입콩 두부와 국산 콩 두부 간 가격차가 크기 때문에 수입콩 공급을 줄인다고 국산 콩 소비가 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부가 직배 물량을 줄이고 직배 공매와 수입권 공매 등 입찰 물량만 확대하는 것도 두부 생산을 위축시킨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두부 제조업체의 90%는 영세 중소기업이라 가격 부담 때문에 입찰에 나서지 못하고 있어서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입찰 물량은 직접 공급보다 5~10%가량 높은 가격을 형성한다. 입찰에 부담이 작은 대기업의 생산 증가도 기대하기 어려운 처지다. 두부 제조업은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돼 풀무원 등 대기업이 식당이나 급식업계 등에 공급하는 두부 생산량을 마음대로 늘릴 수 없다. 수입 콩에서 직배 물량 비중은 2016년 80%에서 올해 64.6%로 떨어졌다. 대신 직배 공매와 수입권 공매 등 입찰 물량 비중은 20%에서 35.4%로 늘었다. 정부 관계자는 "두부 제조업계 외에도 다양한 업계의 요구가 있다보니 입찰 물량이 늘었다"고 말했다.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은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게 콩 수입 물량 확대 및 수입 규제 개선을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부는 지난 10일 내년도 직접 공급 물량을 앞당겨 시장에 투입했지만 업계에선 수요 대비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한 두부업체 사장은 “정부가 수입량 자체를 늘리지 않고 매년 다음 연도 물량을 앞당겨 공급하는 식으로 ‘땜질식 처방’을 하면서 매년 콩부족 사태가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콩이 부족해진 배경엔 두부 소비가 급증한 영향도 있다. 코로나19로 경기 침체와 ‘집콕’이 겹쳐 저렴한 식재료인 두부 수요가 크게 늘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두부류 및 묵류 판매액은 7716억원으로 전년(7040억원) 대비 9.6% 급증했다.
성낙철 연식품연합회 회장은 “올해 두부 판매가 작년보다 최소 15% 이상 늘었다”고 전했다. 두부 가격은 오름세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에 따르면 두부는 지난 3분기 전년 동기 대비 가격 상승률(16.5%)이 생활필수품 38개 품목 가운데 두 번째로 높았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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