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텍사스 파운드리 20兆 투자…이재용 사인만 남았다

입력 2021-11-14 17:28   수정 2021-11-22 18:58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14일 오전 7시45분쯤 전세기 전용 출입국 공항인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 정문을 들어섰다. 별도 비서진이나 수행원 없이 나선 단출한 출장길이다. 이날 타고 떠난 전세기에도 승무원 외 다른 사람은 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홀로 출장에 나선 것은 미국과 캐나다 등지에서 만날 사람들이 그만큼 글로벌 정상급 인사임을 방증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 일정에선 삼성전자 임원들과 동행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친분을 쌓은 비즈니스 파트너와는 1 대 1로 긴밀하게 만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파운드리 신규 투자도 후보 선정을 위한 검토는 마무리됐고, 이 부회장의 서명만 남은 단계인 것으로 전해졌다.

미뤄진 반도체 투자, 본격 시작
이 부회장이 이번 출장에서 미국 제2 파운드리 공장 투자안을 확정하면 논의가 시작된 지 1년 만에 투자안이 확정되는 것이다. 그간 업계에서는 경쟁사인 대만 TSMC는 공격적으로 투자 속도를 올리는 데 비해 삼성전자는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인다고 우려했다.

대만 TSMC는 미국 애리조나에 120억달러(약 14조1500억원)를 투자해 파운드리 조성에 들어갔다. 2024년 완공이 목표다. 5㎚(나노미터·1㎚=10억분의 1m) 미만 최첨단 파운드리 라인이 들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TSMC로부터 자극을 받아 투자 금액을 100억달러(약 11조8000억원)에서 170억달러(약 20조원)로 늘렸지만 파운드리 설립 지역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신규 파운드리 부지로 거론된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테일러, 애리조나주 굿이어, 퀸크리크, 뉴욕주 제네시카운티 등 다섯 곳 가운데 오스틴, 테일러 두 곳을 두고 막판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안에 제2 파운드리 부지를 확정해야 TSMC의 애리조나 공장과 비슷한 시기에 미세공정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다”며 “지금보다 파운드리 설립 시기가 늦어지면 글로벌 고객사들을 TSMC에 대거 뺏길 수 있다”고 말했다.

파운드리 재진출을 선언한 인텔의 추격도 만만치 않다. 인텔은 3월 200억달러(약 22조5000억원)를 투자해 애리조나주에 새로운 파운드리 두 곳을 건설할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가동 시기는 2024년으로 예상된다.
중국 자극할라…일정 극비에 부쳐
미국 정부와의 반도체 공급망(SCM) 관련 논의 가능성도 점쳐진다. 미국 정부는 9월 전 세계 반도체 기업에 재고와 고객사별 매출, 리드타임 등 민감한 정보를 제출하라고 압박했다. 삼성전자와 TSMC 등 각국 기업은 고객사 이름 등을 제외한 정보를 최근 미국 정부에 공개했다.

미국 정부의 압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반도체 기업들의 정보 자체도 중요하지만 정기적인 ‘군기 잡기’를 통해 반도체 패권 전쟁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포석을 마련하려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이번 출장길에서 개인적인 글로벌 네트워크를 동원해 미국 정부와 타협점을 찾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미국 내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는 대신 민감한 영업 정보를 지킬 것이란 해석이다.

중국 정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것도 관건이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도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제조 공장을 두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에 지나치게 협조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중국 정부를 자극할 수도 있다”며 “삼성전자가 이 부회장의 일정을 극비에 부치는 것도 이 같은 점을 의식해서일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경영 재개 신호탄
이 부회장의 해외 출장은 지난해 10월 베트남 이후 1년1개월 만이다. 미국 출장은 2016년 7월 선밸리 콘퍼런스 참석 이후 처음이다.

이 부회장은 2001년 상무보로 경영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부터 매년 연휴마다 전 세계 해외 사업장을 방문해왔다. 2019년 설 연휴에도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 2기 공사 현장을 찾았다. 그해 추석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도심 지하철 공사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삼성 내부에서 ‘명절 글로벌 경영’이란 용어까지 나온 배경이다.

명절 기간이 아니더라도 틈틈이 해외 사업장과 글로벌 경영 현장을 찾았다. 반도체 미세공정에 반드시 필요한 극자외선(EUV) 장비를 확보하기 위해 생산업체인 네덜란드 ASML 에인트호번 본사를 꾸준히 방문한 것도 알려진 얘기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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