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정신적 아편이다.”
지난 8월 중국 관영매체의 이 같은 보도에 중국 최대 게임업체 텐센트의 시가총액 600억달러(약 70조8000억원)가 몇 시간 만에 증발했다. 중국 정부가 투자자들에게 ‘중국 정부와 싸우지 말라’는 투자 격언을 새겨준 순간이다. 하지만 이 말은 반대로 중국 정부가 밀어주는 기업에 투자하면 이익을 얻을 확률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근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주재한 공산당 중앙정치국회의에서 두 가지 지침을 내놨다. 빅테크(대형 정보기술기업) 등의 독점을 규제한다는 방침과 함께 강소기업인 ‘작은 거인’을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시 주석이 추진하는 ‘공동부유’를 실현하기 위해 대기업보다 강소기업을 밀어주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전정특신(專精特新) 작은 거인’ 프로젝트를 통해 중국 정부는 직접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한 강소기업 리스트를 만들어 발표했다. 현재 4922개의 중소기업이 목록에 올랐는데 앞으로 5년간 100억위안을 지원하겠다는 구상이다. 15일 베이징증권거래소가 문을 연 것도 증시 진입 장벽을 낮춰 강소기업들이 쉽게 상장하도록 돕기 위해서다.
항저우실란이 주목받는 이유는 중국에서 몇 안 되는 종합반도체기업(IDM)이기 때문이다. 팹리스(반도체 설계업체)나 대만 TSMC와 같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와 달리 자체 기술로 반도체 설계부터 생산까지 모두 담당하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처럼 완성형 반도체기업인 셈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반도체 업계에서 IDM은 비효율적이란 지적을 받았다. 설계와 생산을 모두 하려면 투자 비용이 크게 들어서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중국 정부가 반도체 자체 생산에 열을 올리고 있고 글로벌 반도체 공급난까지 겹쳤다. 항저우실란은 축적한 기술력으로 다른 기업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 생산하면서 규모를 확장하고 있다. 허리중 캐피털시큐리티스 애널리스트는 “20년 이상 IDM 외길을 걸은 항저우실란이 옳았다”며 “이제는 수확에 나설 시기”라고 평가했다.
주력 제품인 전력반도체 시장이 호황을 맞으면서 항저우실란의 지난해 매출은 42억8100만위안으로 전년보다 37% 늘었다. 영업이익도 1232만위안으로 106% 증가했다. 올 1분기에는 매출과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113%, 1127% 늘어나며 어닝서프라이즈를 달성했다. 실적은 그대로 주가에 반영돼 주가도 지난 1년 새 약 345% 뛰었다.
중국 금융정보업체 시나파이낸스에 따르면 최근 6개 중국 증권사가 항저우실란에 ‘강력 매수’ 등급을 매겼다. IDM으로 규모의 이점을 누리고 있고 중국 정부가 밀어주는 두 가지 카테고리인 ‘반도체’와 ‘강소기업’에 모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다.
류시앙 카이위안시큐리티스 애널리스트는 “항저우실란은 전력반도체인 IPM, IGBT와 센서반도체인 MEMS 모두에서 매출이 두 배 이상 늘어나는 등 빠르게 시장을 점유해나가고 있다”며 “전기차용 전력반도체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수혜를 볼 것”이라고 했다.
맹진규 기자 mae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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