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종억 통일문화硏 이사장 "독립운동한 선친 닮으려 23년간 민족사업"

입력 2021-11-15 18:06   수정 2021-11-16 00:54

“우리 조상들의 묘비가 벌판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현지 고려인도 자주 가기 어려운 고립무원에 90년 전 한국인들이 떨어졌던 것입니다. 같은 민족이라면 서로 챙겨주는 게 도리에 맞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이역만리 떨어진 카자흐스탄에 ‘한민족의 성역’을 조성하는 이유입니다.”

라종억 통일문화연구원 이사장(사진)은 2017년 카자흐스탄을 방문했다가 깜짝 놀랐다. 중앙아시아에 처음으로 정착한 고려인들의 묘지가 너무 초라하게 방치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그는 이듬해 카자흐스탄에 지부를 세워 고려인 돕기에 나섰다. 한국에서 5000㎞나 떨어진 곳에 라 이사장이 추모공원을 짓고 있는 이유다.

최근 한국경제신문과 만난 라 이사장은 “지난 8월 카자흐스탄에 묻힌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국내로 돌아온 것은 기쁜 일이지만, 고려인에겐 정신적 지주가 사라진 것과 같은 일”이라며 “송환을 계기로 한국인이 고려인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일문화연구원은 2019년부터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에 ‘한·카자흐스탄 우호친선공원’을 건설 중이다. 우슈토베는 1937년 연해주에서 거주 중이던 조선인들이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대거 옮겨질 당시 처음으로 정착했던 곳이다. 울타리를 세우고, 흙 벌판에는 보도블록을 깔아 정갈하게 정리한 뒤 가운데엔 고려인 추모비를 세웠다.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고려인 항일 유공자를 위한 ‘추모의 벽’도 건설 중이다. 앞으로는 이 지역 일대를 공원화해 고려인을 추모하고, 한국과 카자흐스탄의 친선을 기념하는 역사 유적지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라 이사장은 카자흐스탄에서 고려인을 위한 한글교육 지원사업과 의료봉사도 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만난 고려인 중 다수가 한글·한국어를 잊은 채 살고 있는 것을 라 이사장이 직접 보면서 교육사업을 시작했다.

“카자흐스탄의 한 시장에 가 보니 한국 음식을 팔고 있는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 눈물을 흘리셨는데, 한국어는 이미 오래전에 잊었더군요.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주시경 선생님 말씀 중에 ‘말을 잃으면 민족을 잃는다’는 것이 있죠. 민족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국어 교육은 정말 필요합니다.”

그는 1998년부터 통일문화연구원을 이끌며 탈북민을 위한 정착지원사업에 매진해왔다. 고려인을 비롯해 조선족, 재일동포, 다문화가정 등을 위한 지원사업도 하고 있다. 그가 23년이나 탈북민, 해외동포를 위해 나선 데는 그의 부친인 고(故) 라용균 전 국회부의장의 영향이 컸다. 라 전 부의장 역시 일본, 상하이, 모스크바 등 세계를 떠돌며 독립운동을 해왔기 때문이다.

라 이사장은 “아버지가 민족을 위해 바쳐온 헌신을 조금이라도 닮기 위한 일을 찾다 보니 이 사업에 20년 넘게 매진하고 있다”며 “남북통일뿐만 아니라 해외동포, 이주민을 위한 문화적 통일에도 우리가 함께 나서야 한다”고 했다.

그는 “내년은 한국과 카자흐스탄의 수교 30주년이 되는 해”라며 “양국 친선을 위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고려인들에게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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