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음악의 역사가 바뀔 거야.” 헝클어진 머리의 한 남성이 혼잣말을 하더니 지휘를 시작한다. 2006년 개봉한 영화 ‘카핑 베토벤’(사진)의 한 장면이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의 ‘교향곡 9번’(합창) 초연을 담고 있다.
합창 교향곡은 영화 대사처럼 음악의 역사를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0년 넘게 악기 소리로만 채워졌던 교향곡에 처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악기’인 사람의 목소리를 더해 만들어진 혁신적인 작품이다.
그런데 영화에서 음악에 감탄한 관객들이 보내는 환호성은 몇 초 동안 음소거된다. 베토벤이 귀가 멀어 듣지 못하는 상황을 음소거로 표현한 것이다. 실제 이 공연이 열렸을 때도 베토벤은 관객의 환호성을 알아채지 못했다. 알토 가수가 그를 돌려세우고 나서야 이를 알고 감격의 인사를 했다. 베토벤의 삶을 관통하는 고통과 환희, 그 모든 것이 응축된 순간이 아닐까 싶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자유와 사랑을 노래했던 ‘악성(樂聖)’ 베토벤. 합창 교향곡뿐 아니라 수많은 그의 명곡들은 다양한 감정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이며 오늘날까지 우리 가슴을 뜨겁게 울리고 있다.
테너이자 궁정악장이던 아버지는 아들의 재능이 출중한 것을 알고 한껏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유럽 전역에 이름을 알린 모차르트처럼 아들을 키우고 싶었고, 일부러 베토벤의 나이를 낮춰 신동 마케팅을 벌였다. 아들에게 폭언과 폭행도 서슴지 않았으며, 음악을 제외한 교육은 받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베토벤의 뛰어난 재능은 불행 속에서도 꽃을 피웠다. 14세에 쾰른 궁정의 오르가니스트 조수가 돼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고, 작곡도 활발히 했다. 초기작으로는 ‘피아노 소나타 8번’(비창), 교향곡 1번과 2번 등이 있다. 베토벤이 남긴 9개의 교향곡엔 그만의 감정과 개성이 가득 담겨 있다. 스승인 하이든으로부터 고전주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이를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독자적인 낭만주의의 길을 열었다.
베토벤의 음악 인생은 1800년대에 급격히 전환됐다. 청력 장애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큰 고통에 동생들에게 유서를 쓰기도 했지만 그는 끝내 자살하지 않았다. 이유는 훗날 베토벤의 얘기에서 짐작할 수 있다. “내 가슴 속에 있는 창작욕을 다 태우기 전에는 세상을 떠날 수 없었다.”
1819년 베토벤의 청각은 완전히 상실됐다. 하지만 그는 운명에 맞서 싸우기라도 하듯 작곡을 멈추지 않았다. 매일 작업했고 괴테 등이 쓴 작품을 읽으며 영감을 얻었다.
그렇게 1824년 그의 마지막 교향곡인 합창 교향곡이 탄생했다. 100여 명의 관현악단, 4명의 솔리스트, 100명 이상의 합창단이 함께 무대에 오르는 대작이다. 그 위대함은 규모 때문만이 아니다. 1악장에서부터 차례로 불안과 투쟁, 숭고한 사랑 등 다양한 감정이 펼쳐지고 4악장에선 폭발적인 환희에 이른다.
합창 교향곡은 오늘날까지도 연말이 되면 세계 곳곳에서 울려 퍼진다. 자유와 환희, 인류애를 노래하는 만큼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에 잘 어울린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베토벤의 위대한 삶과 철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가장 뛰어난 사람은 고독과 고뇌를 통해 환희를 차지한다."
◆‘7과 3의 예술’에서 7과 3은 도레미파솔라시 ‘7계음’, 빨강 초록 파랑의 ‘빛의 3원색’을 의미합니다. 이를 통해 큰 감동을 선사하는 예술가들의 삶과 철학을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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