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관념에 엄격한 일본인?…과거 외국인 일기 봤더니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입력 2021-11-15 06:54   수정 2021-11-15 09:47


"새해 인사를 도는데만 꼬박 이틀을 쓴다." "주문한 목재가 약속한 날에 도착하지 않는다."

에도시대 개항지였던 나가사키에서 일한 외국인 기술자들의 일기에는 시간관념이 없는 일본인에 대한 한탄이 자주 등장한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한국과 마찬가지로 당시 일본인의 시간은 최소단위가 2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닭 울음소리, 절의 종소리 등으로 시간을 가늠하는 애매한 기준도 원인이었다.

현재의 '시간관념에 엄격한 일본인'의 이미지가 형성된 건 1872년 철도가 개통하면서다. 일본 철도는 정시운행을 지키기 위해 24시간제를 도입했다. 시간표를 정해 발차 5분 전까지 역에 도착하지 못한 손님의 탑승을 금지하는 등 시간을 철저히 지켰다.

나카무라 나오후미 도쿄대 교수는 요미우리 신문에 "철도는 자연의 시간축으로 살아온 일본인에게 처음으로 분 단위의 시간을 인식시켰다"고 설명했다.

일본인에게 시간관념을 주입한 일본 철도가 다시 한번 시간의 개념을 바꾸는데 앞장서고 있다. 절대시각에서 상대시간으로의 전환이다. 절대시각은 '16시45분'과 같이 누가 봐도 같은 시간이다. 반면 '앞으로 7분전'과 같이 보는 사람에 따라 개념이 달라지는 시간표시를 상대시간이라고 부른다.


JR동일본은 2019년 도쿄 도심 순환선인 야마노테선 플랫폼의 발차안내표시를 절대시각에서 상대시간으로 바꿨다. 지금까지는 플랫폼 안내판의 다음 열차 도착시간을 '**시**분'으로 표기하다가 2019년부터 '앞으로 **분'으로 바꿨다는 의미다. 도쿄메트로 긴자선은 이보다 앞선 2018년 상대시간을 도입했다. 오사카메트로 미도스지선도 내년부터 상대시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JR동일본은 "'몇시몇분'보다 '앞으로 몇 분 뒤에' 열차가 오는지 알고 싶어하는 승객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상대시간 도입배경을 설명했다.

상대시간은 이미 일상 속에 깊이 침투해있다. 테마파크의 인기 놀이기구나 맛집의 대기열 앞에는 '지금부터 1시간', '안내까지 25분'으로 대기시간을 표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SNS와 뉴스사이트도 '5분전, 1시간전, 어제'와 같이 상대시간으로 게시시간을 표시한다.

이치가와 마코토 지바대 교수는 "이용자의 눈높이에 맞춘 상대시간은 즉각적인 이해가 가능하다"며 "앞으로 몇 분, 몇 시간 남았는지 파악되면 그 사이 다른 일을 할 수 있어서 바쁜 현대인의 시간관리에 적절하다"고 설명했다.

상대의 행동을 촉구하는 효과도 있다. 트위터는 투고 일시를 초단위로 표시한다. 투고라는 '회화'에 라이브감을 부여해 리트윗을 활발하게 만드려는 노림수다. 방재 측면에도 상대시간이 활용된다. 가나가와현의 인기 관광지 가마쿠라시는 난카이트랩 지진이 발생하면 쓰나미가 8분만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이다.


가마쿠라시는 '쓰나미 도착까지 8분'이라고 큼지막하게 표시된 화면을 홍보하고 있다. 복잡한 설명 대신 '단 8분' 이라는 충격적이면서 명료한 표현을 통해 주민들의 피난행동을 유도하는 것이다.

상대시간이 뜨는 만큼 절대시각은 지고 있다. 절대시각의 기수 역할을 하던 손목시계의 출하량이 10년새 30% 이상 줄었다. 휴대폰 보급의 영향이다. 일본에서 손목시계가 각광받은 건 전차로 통근하는 샐러리맨이 늘어나던 1970년대 고도성장기였다. 1977년 제조량은 4490만개로 거의 전 세대가 손목시계를 보유했다.

1990년대 핸드폰의 등장으로 저물어가던 손목시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고급화 노선을 채택하고 외국인 관광객 수가 급증한 효과로 반짝 회복했다. 2015년부터는 스마트워치의 위협을 받았고, 코로나19 이후 외출이 줄면서 시대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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