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도 영입 경계한 인재, SMIC 떠나자…중국이 발칵 뒤집혔다

입력 2021-11-15 11:47   수정 2021-12-15 00:01


'반도체 자립'을 꿈꾸는 중국의 계획에 빨간 불이 켜졌다. 중국이 키우는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중신궈지(SMIC)의 핵심 경영진들이 줄사퇴하면서다. 현지 당국은 파격적 세제 혜택과 과감한 투자로 반전을 꾀하려 하지만 업계 최고 전문가들이 손 털고 떠난 만큼 인재 영입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선 자존심 센 TSMC 출신 인재들의 '교통정리'에 실패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장상이 영입에 미국까지 긴장했는데…
15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장상이 SMIC 부회장이 최근 회사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장상이는 중국이 국가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는 반도체 자립 실현의 구원투수로 영입했던 인물. TSMC 출신의 '파운드리 거물'인 그가 1년도 안 돼 SMIC를 떠나면서 다양한 말들이 나오고 있다. 회사 측은 장상이 부회장이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사직했다고 했지만 외부에서는 SMIC 고위층 간 알력 여파라는 관측이 파다하다.

SMIC는 첨단 미세 공정 개발 돌파구 마련에 기대를 걸고 지난해 12월 장상이를 부회장으로 영입했다. 그는 미국 프린스턴대와 스탠퍼드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1997년 TSMC에 들어가 2013년 퇴직했으며 2015년까지 고문을 맡았다.

업계는 화웨이와 더불어 미국의 핵심 표적이 돼 어려움에 빠진 SMIC가 장상이 영입을 통해 돌파구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했다. 실제로 장상이는 TSMC에서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아 0.25마이크로미터(㎛), 16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공정 개발을 진두지휘하는 등 TSMC를 세계 최대 파운드리 회사로 성장시킨 주역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그런 장상이를 SMIC가 영입해 미국도 위기감을 느낀다는 말까지 흘러나왔다.


SMIC로 자리를 옮긴 장상이는 10나노 이하 반도체 공정 개발을 총괄했다. 미국의 압박으로 ASML의 최첨단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도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첨단 패키징 기술로 승부를 보고자 관련 연구를 추진해왔다.

그러나 2017년부터 SMIC를 이끌던 같은 TSMC 출신 량멍쑹 최고경영자(CEO)가 장상이에게 주도권을 뺏겼다는 판단에 사직 의사를 밝히는 등 SMIC 최고 경영진 간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량멍쑹은 이사회 만류로 사임 의사를 접었지만 장상이와의 불편한 동거가 이어졌다.

중국 경제 매체 차이신은 "SMIC 내부에서 량멍쑹과 저우쯔쉐 당시 회장, 공동 CEO 자오하이쥔 간 불화는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장상이가 떠난 이유는 량멍쑹이 이끄는 선진 공정 개발팀이 회사 내부에서 더 인정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2015년부터 6년 동안 SMIC를 이끌며 장상이 영입에 앞장선 저우쯔쉐도 지난 9월 '개인 사유'로 사임했다. 2015년 3월 회장직을 맡은 지 약 6년 만이다. 여기에 SMIC의 핵심 엔지니어였던 우진강 연구개발(R&D) 부사장도 스톡옵션 16만주를 포기하고 지난 7월 회사를 떠났다. 우진장은 2001년 SMIC에 들어가 2014년부터 R&D 부사장을 맡았다. 최고 경영진들이 줄사퇴한 SMIC는 최고재무책임자(CFO)인 가오융강이 회장 직무대리를 맡고 있다.
미국 견제에 핵심 인재 이탈까지…SMIC '가시밭길'

장상이까지 물러나자 SMIC뿐만 아니라 중국 당국이 느끼는 위기감까지 고조되는 분위기다. SMIC는 지난해 9월 미국 정부가 작성한 거래 제한 기업 명단(블랙리스트)에 오른 이후 미국 기업으로부터 반도체 기술·장비를 수입할 길이 막히면서 첨단 공정 개발에 어려움을 겪었다. 미국 국방부의 블랙리스트에도 올라 자본 시장에서도 배제됐다.

반도체 회로선 폭이 좁은 14㎚ 이하의 선진 미세 공정일수록 미국의 기술 없이 반도체 부품을 생산하기가 더욱 어렵다. SMIC는 첨단 미세공정의 관문으로 여겨지는 14나노 공정 제품을 갓 생산하기 시작했고 2021년과 2023년 각각 10㎚, 7㎚ 미세 공정의 제품을 양산한다는 계획을 수립한 터여서 공급망과 자금줄을 모두 끊으려는 미국 제재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지난 3월 미 국립인공지능보안위원회(NSCAI)가 동맹국과 협력해 중국에 대한 첨단 장비 공급을 차단해야 한다고 권고한 것도 중국에 악재다. 이로 인해 SMIC는 EUV 노광 장비 등 첨단 반도체 생산 장비와 각종 재료를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의 견제로 SMIC의 고립이 심화되는 가운데 핵심 인력마저 회사를 나가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SMIC 내분, 반도체산업 이해 못한 중국의 판단 착오"
중국 정부는 인재가 떠난 자리를 돈으로 메꾸고 있다. 차이신은 지난 13일 SMIC가 상하이 자유무역구에 자본금 55억 달러(한화 약 6조4800억원) 규모의 합작 회사를 설립했다고 보도했다. SMIC와 국가집적회로(IC)산업투자펀드 2기(약칭 대기금2기), 하이린웨이가 각각 36억5500만 달러, 9억2200만 달러, 9억2300만 달러씩 출자해 각각 36.67%, 33.33%, 30%의 지분을 갖는다.

대기금2기는 중국 정부 주도의 반도체 산업 육성 펀드, 하이린웨이는 상하이시 정부의 반도체 육성 펀드 '상하이집적회로산업펀드'가 만든 회사다. 사실상 합작 법인의 실질적 주인은 3분의 2 이상 지분을 확보한 당국인 셈이다.

SMIC는 자유무역구 린강지구 관리위원회와 합자 회사를 세워 향후 매월 28나노 이상 공정이 적용된 12인치 웨이퍼 10만개를 생산할 공장을 새로 짓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번에 정부가 부담한 자금 규모가 구체적으로 공개된 것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에도 대기금과 상하이집적회로산업펀드를 통해 SMIC에 2조원대 투자를 한 바 있다. SMIC가 사실상 중국 유일의 대형 파운드리사로서 전략적 중요성이 더욱 커진 데다 핵심 인재 유출마저 가속화되자 당국이 투자를 대폭 늘리고 있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파운드리는 투자와 기술, 보안보다 인재가 더 중요하다. 한 명의 핵심인재가 반도체 기술 격차를 5년 이상 단축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며 "SMIC의 내분은 반도체 산업을 제대로 이해 못한 중국의 판단 착오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파운드리에서만큼은 전 세계에서 TSMC 출신이 무조건 갑(甲)인데 그들을 당국이 좌지우지 할 수 있겠나"라고 덧붙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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