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슈퍼컴퓨터 '후가쿠(富岳·사진)'가 미국과 중국을 제치고 2년째 세계 1위를 지켰다.
일본 이화학연구소는 후지쓰와 공동 개발한 후가쿠가 슈퍼컴퓨터의 계산속도를 겨루는 '톱 500' 등 4개 부문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다고 16일 발표했다. 인공지능(AI) 분야의 계산력과 산업응용 분야의 계산 처리속도, 빅데이터 해석능력 등 3개 부문에서도 1위를 유지했다.
후가쿠는 1초에 44경2010조회의 계산성능을 입증해 미국의 슈퍼컴퓨터 서밋(초당 14경8000조회)을 크게 앞섰다. 2~3위는 미국, 4~5위는 중국 슈퍼컴퓨터였다.
후가쿠가 4관왕을 차지한 건 작년 6월 이후 4회 연속이다. 작년 6월 후가쿠는 일본 슈퍼컴퓨터로는 2011년 이후 8년 만에 세계 1위에 올랐다. 국제전문가회의는 매년 6월과 11월 2차례 슈퍼컴퓨터 순위를 발표한다.
중국은 2013년 6월부터 2017년 11월까지 10회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했다. 2018년 6월 이후 작년 11월까지는 미국 서밋이 4회 연속 1위를 유지했다.
2014년 민관 협력으로 개발을 시작한 후가쿠에는 1300억엔(약 1조4765억원)이 투입됐다. 일본을 대표하는 후지산(富士)에 높은 성능을 보유한 큰 산(岳)이 되라는 뜻에서 후가쿠라는 이름을 붙였다.
주요국이 슈퍼컴퓨터 개발에 공을 들이는 것은 현대 과학기술 사회의 필수적인 연구인프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신약개발이다. 신약 개발은 수많은 물질 가운데 병원균에 효과가 있는 후보를 찾는 작업이다.
일본은 지난 3월부터 후가쿠를 코로나19 대책에도 투입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포함된 비말의 확산 시뮬레이션과 집중호우 등의 기후예측, 각종 산업용 시뮬레이션에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가와사키중공업은 지난달부터 항공기 연비와 비행속도 등을 평가하는 정밀 시뮬레이션에 후가쿠를 활용하고 있다. 기존 장비로 8시간 걸리던 공작기계 가공 후의 상태를 10분만에 예측해 내기도 했다.
다만 후가쿠 천하는 오래가지 않을 전망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첨단기술 개발 경쟁을 벌이는 미국과 중국이 1~2년내 초당 100경회의 계산속도를 보유한 차세대 슈퍼컴퓨터를 개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반면 일본은 후가쿠 후속모델의 개발계획도 세우지 못하고 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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