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서남단에 있는 진도는 제주도와 거제도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섬이다. 1984년 진도대교 완공으로 뭍과 연결되면서 섬이란 이름을 달고는 있지만 사실상 육지가 됐다. 진도에 첫발을 들였을 때 새로운 물감을 얻은 화가처럼 가슴이 벅차올랐다. 진도의 땅과 바다가 선물한 풍요로움에 염전을 농토로 바꾸며 거친 삶을 일궈온 진도 사람들의 한이 어우러져 울림 가득한 노래가 됐다. 진하게 ‘진도’를 느낄 수 있는 여행지를 소개한다.
명량해협의 순우리말인 울돌목은 ‘소리 내어 우는 바다의 길목’을 뜻한다. 진도와 해남을 사이에 두고 호리병처럼 좁고 얕아진 해로는 밀물 때 바닷물이 한꺼번에 빠져나가기 때문에 물살이 빠르고 거세다. 물길 사나운 울돌목은 진도를 뭍과 단절된 변방의 유배지로 만들었지만, 정유재란 당시 13척의 배로 133척의 왜선을 무찌르며 기적의 대승을 거둔 명량대첩의 전략적 요지가 되기도 했다.
울돌목은 이순신 장군의 숭고한 정신이 깃든 현장이기에 아이들과 함께하는 역사 여행지로 제격이다. 망금산 정상에 있는 진도타워는 배 모양을 연상케 한다. 진도타워에는 진도 역사관과 명량대첩을 자세하게 즐길 수 있는 전시실, 관람객을 위한 편의시설이 마련돼 있다. 진도타워 전망대에 오르면 탁 트인 울돌목과 바다에 별처럼 박힌 섬들, 해남의 두륜산 그리고 영암의 일출산까지 두루 눈과 가슴에 담을 수 있다. 올해 9월에 문을 연 명량해상케이블카는 울돌목을 또 다른 차원에서 조망할 수 있는 선택지다.
조선시대에 귀양 온 선비들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면서 낯선 섬 생활의 시름을 달랬다. 이들의 귀양살이가 진도의 문화·예술적 자양분이 됐고, 이를 기반으로 예술의 꽃을 피운 인물이 바로 허련이다. 운림산방 안에는 허련 가문이 이어온 남종화의 계보 및 작품을 소개하는 소치기념관과 진도역사관, 남도전통미술관 등이 조성돼 있다. 안개가 구름처럼 피어올라 숲을 이루는 운림산방과 천년고찰 쌍계사를 감싸 안은 천연기념물 제107호로 지정된 상록수림을 함께 걸으면 마치 수묵담채화 속을 거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진도에서 풍류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이뿐만이 아니다. 토요일 오후 5시엔 여귀산 자락을 두르고 귀성리 바다를 굽어보는 천혜의 환경에 있는 국립남도국악원으로 가볼 만하다. 국립남도국악원의 토요상설무대 ‘국악이 좋다’는 진도를 비롯한 남도지역에서 전승되는 다양한 주제로 진행되는 까닭에 흥미진진하다. 일요일 공연은 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가 소속된 진도민속문화예술단이 꾸민다. 진도읍 해창 전수관에서는 북놀이, 조도닻배놀이 등의 공연 관람과 민속문화 체험도 할 수 있다. 진도에선 무형문화재 전승 보전을 위한 발표회가 수시로 열린다.
세방낙조에 이르는 해안도로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될 만큼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해안도로가 아니더라도 세방낙조를 향하는 모든 길이 곱고 아름다워 차창으로 핑크빛 기운이 스며들면 갓길에 차를 세우고 카메라 셔터를 마구 누를 수밖에 없다. 기상청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낙조로 선정했을 정도로 다도해를 뻘겋게 물들이는 몽환적인 세방낙조의 일몰은 진도 여행의 백미로 꼽을 수 있다.
진도=글 박지현/사진 박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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