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에서 팀장으로 살아가는 법 [슬기씨의 슬기로운 회사생활]

입력 2021-11-17 09:44   수정 2021-11-17 09:45

[한경잡앤조이=김슬기 그렙 교육사업팀장] 여기 스타트업이 하나 있다. 5~6명 정도의 멤버들이 똘똘 뭉쳤다. 각자의 명함에는 나름의 직함이 적혀 있긴 하지만, 스타트업의 실무 전선에서는 그건 그냥 종이에 인쇄된 잉크에 지나지 않는다. 전쟁터 인양 달라붙어 일해야 하는 상황에서 포지션을 명확히 구분하거나 업무의 범위를 규정짓는 일은 초기 스타트업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만약 그런 게 중요한 분이라면, 제발 초기 스타트업에 갈 생각은 하지 말자). 우선 생존해야 하니까. 우리가 하는 일이 가치가 있고, 그것이 돈이라는 결과로 나타날 수 있음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니까. 뭐든 할 수 있으면 하는 거다.

그렇게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증명한 스타트업은 한 명 한 명씩 멤버를 늘려 나간다. 20~30명 정도가 되어갈 때 즈음 팀을 나눠 일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보통 이 시점에 상대적으로 해당 조직에서 업무 경험이 더 많고, 히스토리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팀장이 되는 경우가 많다. 즉, 총경력의 길이와는 상관없이 조직의 성장에 따라 팀장직을 맡게 되는 경우도 있다.

나 역시 그런 케이스였다. 일을 시작한 지 겨우 2년 차가 되었을 때 팀을 맡게 됐다. 여기서 이미 코웃음을 치는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보통의 기업에서는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이는 전적으로 스타트업이기에 가능했다. 적어도 그 회사 안에서 내가 담당했던 영역에 대해서는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었으며, 새로운 사람이 입사했을 때 온보딩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인사발령 절차가 있을 리가 있나. 스타트업이 인사 조직과 절차를 갖추고 시작하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 하루아침에, 팀장은 그렇게 탄생한다.

내게 큰 깨달음을 주었던 그때의 팀은 지금까지도 내 삶의 보물이다. 경험이 적었던 내게 팀장이라는 역할은 때때로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그 짓눌러지는 느낌을 견디고 견디면 항상 답은 있었다. 이 글에서는 내가 팀을 처음 맡으며 부족한 경험이나마 무언가를 해보려 애쓰고 온갖 실수도 저지른 뒤 비로소 깨달은 것들을 몇 개 전하고자 한다.

팀과 나를 동일시하기
처음으로 맡은 팀이니 얼마나 잘 꾸리고 싶었겠는가. 경험이 적었기에 그 꿈은 더욱 장대했고 화려했다. 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소중했고 모두 내가 알아야만 했다. 모든 팀원들과 나의 관계는 원만하고 화목해야만 했다. 심지어 적어도 그 조직 내에서는 내가 그 일을 가장 잘 아니, 일 하는 방식도 모두가 나를 닮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팀과 나를 완전히 동일하게 여긴 것이다. 이러다 보니 팀원들의 감정 상태에도 지나칠 만큼 영향을 받았다. 팀원들이 웃으면 행복해지고, 울면 금세 불행해졌다.

당시 막 성장하는 회사였기에 업무량은 폭발적으로 많았다. 퇴근과 출근의 경계 또한 모호했다. 인생에 일 밖에 안 남은 상황이었다 보니 팀을 나 자신과 동일하게 생각하는 현상은 나도 모르게 심해졌다. 물론 그만큼 팀에 집중했기에 얻어진 가치도 많았지만, 지나친 몰입이 나의 두 눈을 가릴 때도 많았다.



‘팀장이니까 나서서 열심히 해결해야지' 라며 팀 관련 모든 이슈에 달려드는 것은 답이 아니었다. 어떤 문제는 시간을 두고 관찰하거나, 팀원에게 과감히 맡기는 용기도 필요했다. 또한 어떤 문제는 해결의 주체가 내가 아니라는 것을 빠르게 판단하는 능력도 필요했다. 그러나 그때 그것을 어찌 알았겠는가. 나는 팀장이니까, 여기는 스타트업이니까,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팀장이니까 모든 일을 알고 모든 일을 잘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말이 안 되는 얘기다. 나 자신의 장단점을 잘 알고, 팀원의 장단점도 잘 파악하고, 그걸 깔끔하게 인정했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때는 왜인지 그것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서로의 장점은 더욱 빛을 발하게 하고, 단점은 상호 보완해줄 수 있도록 팀원 간의 좋은 관계를 만들어가도록 돕는 것이 팀장으로서 중요한 역할임을 깨닫기까지 아주 많은 고난이 있었다.

싫은 소리는 죽어도 못하겠어
이 세상 팀장들이 갖고 있는 가장 큰 고민 중 하나가 아마 ‘피드백' 이 아닐까 싶다. 칭찬이든 아쉬움의 메시지든 늘 피드백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나 또한 이것이 정말 버거웠다. 얼마나 버거웠는지, 팀원들과 면담이라도 할 일이 생기면 잠을 설쳤다. 부정적인 말이라도 할 일이 생기면 용기가 잘 나지 않아 결국 시간만 버린 경우도 많았다. 경력이 짧았으니 나 자신도 피드백을 많이 받아보지 않았고, 특히나 작은 스타트업에서는 체계적인 피드백보다는 우선 되는대로 일을 해치우는 것이 우선일 때가 많으니 참고할만한 사례도 딱히 없었다.

그렇다 보니 최대한 돌려서 말하려고 노력하고, 돌려서 말하느라 쓴 에너지 때문에 혼자 힘들어하고, 이렇게 고민해서 피드백을 나름 전했는데 잘 바뀌지 않는 팀원을 보면 좌절하기도 했다. 때때로 내 피드백을 받아들이지 못해 반박의 메시지를 받는 날에는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남몰래 구석에 쪼그려 앉아 서러워하기도 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난 후 이런 나의 모습은 완전히 실책이었고, 팀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그저 나의 마음 에너지 파먹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선 내가 왜 그렇게 피드백을 힘들어했는지 가만히 스스로를 돌아보았는데, 모두에게 늘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다. 싫은 소리를 하기 싫었다. 짧은 순간이라도 사람들의 표정이 굳거나 분위기가 경직되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하지만 이렇게 팀원에게 전하고 싶은 일련의 메시지가 ‘싫은 소리 하기 싫다'는 미명 하에 어딘가 쌓이게 되면, 쌓인 만큼 팀을 감정적으로 대하기 쉬워진다. 이렇게 감정적으로 감내하는 부분이 커지면 팀원의 작은 행동이나 말 한마디에도 예민해질 수 있다. 빠르게 피드백을 서로 나누었다면 딱히 문제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잠깐의 불편함을 견디기 힘들어 참는다고 참았던 것이 오히려 곪아 터지는 것이다.

팀을 관리하다 보면 좋은 말 보다 싫은 말을 더 많이 해야 할 때도 있다. 역으로 내가 듣기 힘든 말만 주야장천 듣게 되는 시기도 있다. 이럴 때에 팀장으로서 피드백을 회피하거나 팀원에게 정확한 피드백을 주지 않는다면, 결국 문제 해결의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 당장의 기분을 챙기다 팀원의 성장을 저해하게 된다. 이것을 깨닫고 개선하는 데에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힘내라, 스타트업 팀장들
위에 열거한 것들 외에 아주 많은 실수와 좌절의 순간이 있었다. 어떤 것들은 나의 성향과 깊게 연관되어 있어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것들도 있었다. ‘스타트업이니까 괜찮다’며 얼버무린 것도 많았다. 과거 너무나도 미숙했던 나로 인해 팀 내 중요한 결정이 미뤄졌거나 의도치 않게 누군가를 상처 주었던 장면을 회상하면 마음이 쿡쿡 찔리는 것처럼 아직까지도 부끄럽다.

이렇게 힘겹게 ‘스타트업에서 팀장으로 살아가는 법'을 호되게 깨우친 후 현재는 그렙에서 총 9명의 팀원들과 일하고 있다. 팀장으로서 완벽해질 순 없지만 적어도 과거에 했던 실수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이겨내고 있다.

과거에는 모든 팀원들의 능력치가 비슷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아주 크나큰 오산이었다. 팀원이 잘하는 것은 더 잘하도록 이끌고, 부족한 것은 서로 간의 원만한 관계를 통해 자연스레 보완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팀원의 특성을 잘 파악하여 전체 조합을 볼 수 있는 거시적인 시야를 가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피드백 또한 어떤 방식과 때가 적절한지 판단해 전해야 한다. 내가 편할 때 아무렇게나 말하고, 면담 한 두 번으로 해결되리라 여겨선 안된다.

이 글은 스타트업에서 팀장, 즉 중간관리자로 일하며 남몰래 힘들어하거나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썼지만 나 자신에게 되뇌는 말이기도 하다. 나 역시 때때로 ‘아, 팀장 정말 하기 싫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회사의 빠른 성장과 탄탄한 내실을 함께 만족시키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중간에 대롱대롱 매달린 바보가 된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모든 고충을 감안하고서라도 성장하는 스타트업에서 ‘팀장’이라는 포지션은 도전해볼 가치가 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을 한 데 묶어 진정한 의미의 팀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인생에서 쉽게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고생해서 만든 팀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때에 느끼는 기쁨은 말로 형언할 수 없다.

영원한 팀은 없지만, 지금의 팀원들이 나와 함께 일하는 동안만큼은 그 시간이 삶에 의미 있는 시간이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 가장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존재가 나임을 다시금 새기며, 이 세상 모든 스타트업에서 ‘팀장', 또는 다른 이름으로 작던 크던 팀원들을 이끌고 있는 모두가 용기를 내길 바란다.

김슬기 씨는 피아노 전공이지만 컴퓨터를 좋아해 직업을 IT분야로 선택했다. 현재 프로그래머스 서비스를 운영하는 그렙 교육사업팀장을 맡고 있는 그녀는 코로나19와 관계없이 영원히 원격 근무를 지향하는 그렙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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