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요즘 국민(유권자)의 주가가 부쩍 오른 듯합니다. 높으신 나리들이 머리 조아리며 이것저것 다 해주겠다니까요. ‘포유류(개·돼지)’도 모자라 ‘양서류 이하(가재·붕어·개구리)’에 비유됐던 국민이 갑자기 신분상승한 건가요? 아니죠. 정치판 대목인 선거철이니까요.
정치인은 속된 말로 ‘정치적 장사꾼’입니다. 좀 점잖게 말해 ‘정치는 곧 비즈니스’라는 게 제임스 뷰캐넌(1986년 노벨경제학상) 등 공공선택학파의 신랄한 관찰이죠. 입으로는 국민과 공익을 외치지만 속은 사리사욕으로 꽉 차 있다는 겁니다. 투표 거래, 철의 삼각형, 예산 극대화 등이 그런 정치 파생물입니다. 나랏빚이 왜 날로 불어나는지, 정부와 권력은 왜 커지기만 하는지, 특수 이익집단은 왜 이리 많은지, 별로 하는 일도 없는데 정치인들은 왜 재산이 잘만 불어나는지….
김태유·김연배 서울대 교수의 《한국의 시간》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중국인은 가정을 걱정하고, 일본인은 기업을 걱정하고, 한국인은 나라를 걱정한다.” 주자학 영향으로 정치지향성이 강하고, 나라가 개개인 삶을 좌우한 역사 탓일까요?
그보다는 이대로 가다간 정말 큰일 나겠다는 본능적 불안감 탓일 겁니다. ‘예정된 미래’가 빤히 보이니까요. 저출산과 인구 감소는 차치하고 미래를 낙관할 구석이 전혀 안 보입니다. 법치, 사회기강, 외교안보, 에너지, 부동산, 교육, 일자리 등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죠. 한쪽에선 거품, 다른 한쪽에선 좀비가 넘쳐납니다. 나랏빚은 내년 1000조원, 8년 뒤 2000조원이 된다니 베네수엘라, 그리스가 눈에 어른거리죠. 외환위기, 금융위기 다 넘겼는데 한 번 더 넘어지면 다시 일어날 힘이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몇 해 전 엄동설한에 촛불 들고 ‘이게 나라냐’던 분들이 있었고, 매주 태극기 들고 ‘이건 나라냐’던 분들도 있었죠. 다 부질없는 일이 돼 버렸습니다. 바꿨더니 더 나빠졌고, 들은 척도 안 하고 5년을 허송했으니까요. 조국 사태란 게 뭐겠습니까. 불공정과 ‘내로남불’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죠. 윤미향, 이상직, LH, 대장동 등도 오십보백보죠. 옳고 그름의 기준은 하나 아닌가요? 누가 봐도 잘못했는데 우리 편은 괜찮고 상대편이면 적폐인가요? 사회 자체가 거대한 학교인데 아이들이 뭘 배울지 겁부터 납니다.
100여 일 뒤 대선에선 둘 중 한 명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99.9%입니다. 그런데 ‘음주운전 대 초보운전’이란 우려가 많습니다. 사법 리스크도 그렇고, 영 미덥지 못합니다. 지난 5년간 반드시(또는 반듯이) 했어야 할 노동·교육·연금 등 진짜 개혁을 나 몰라라 했으니 다음 정부는 이를 바로잡기도 버거울 겁니다.
그런데 더 나쁜 길로 들어설 참입니다. 정부의 부실 세수추계도 문제지만 거대 여당이 헌법·국가재정법까지 무시하고 전 국민에게 나눠줄 돈을 내놓으라고 압박하는 건 상상을 초월합니다. 여당 후보가 25조원 부르니 야당 후보가 50조원으로 받고 더 치는 식입니다. 부동산 해법이라고 100만, 200만 가구 마구 던지는 것도 뒷감당은 어쩌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세금 왕창 걷어 기본소득을 나눠주겠다는 발상도 문제지만 국토보유세를 걷으면 국민 90%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편 가르기는 더 악성이죠.
감속성장과 대전환의 시대에 무슨 구상과 해법이 있기나 한지 모르겠습니다. 계속 각자도생해야 하는 국민의 나라 걱정이 더 큰 이유일 겁니다. 그러니 정치에 너무 기대하지 마세요. 그럴수록 실망만 커지니까요. 메시아도 유토피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라 걱정하는 국민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리는 정치인이면 DJ 얘기처럼 ‘서생의 문제의식, 상인의 현실감각’을 갖기 바랍니다. 앨프리드 마셜의 ‘뜨거운 가슴, 냉철한 이성’도 같은 얘기죠.
그나마 다행은 정치가 아무리 엉망이어도 기업들이 나라를 이끌어가고, 세계 어디서도 꿀리지 않는 젊은이들이 있다는 점이죠. 미래세대를 위해 기성세대가 할 일은 나라 망칠 포퓰리즘을 단호히 막아내는 것입니다. 제발 국민이 나라 걱정 그만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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