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동안 두 가지 큰 사고를 겪었다. 첫 번째는 18살 때 전차 사고이고 다른 하나는 디에고와의 만남이었다. 두 사고 중 디에고가 더 끔찍했다.”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1907~1954)가 18세 때 당한 교통사고는 소녀의 온몸을 부수고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극심한 아픔을 잊기 위해 시작한 그림은 그녀를 세계적인 화가로 만들었다. 두 번째 사고인 멕시코 벽화 거장 디에고 리베라와의 결혼은 그녀의 마음을 산산조각냈다. 상처를 달래기 위해 칼로가 선택한 건 이번에도 그림이었다.
칼로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자화상 '디에고와 나'가 남미 작품 사상 최고가(3490만달러, 약 412억7000만원)로 거래됐다. 1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소더비 경매에서다. 자신의 이마에 세 개의 눈을 가진 리베라를 그려넣은 이 그림은 남편의 벽화(980만달러)가 갖고 있던 기존 남미 작품 최고가를 뛰어넘었다.
칼로는 1928년 국립예비학교에서 네 아이의 아버지이자 자신보다 21살이나 많은 리베라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칼로가 "나의 평생 소원은 디에고와 함께 사는 것, 그림을 계속 그리는 것, 혁명가가 되는 것 세 가지"라고 말했을 정도로 사랑은 뜨거웠고, 둘은 1년 뒤 결혼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결코 순탄치 못했다. 리베라의 병적인 여성 편력과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인한 유산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그녀는 죽기 전 마지막 일기에 이렇게 썼다.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리베라가 주는 마음의 고통을 잊기 위해 칼로는 자화상을 그렸다. 그녀는 그림 속 은유적인 표현을 통해 상처받은 자신의 모습을 표현했다. 자신의 이마에는 리베라의 얼굴을 그리곤 했는데, 이는 파괴의 신 시바가 가지고 있는 제 3의 눈으로 자신과 리베라의 관계를 은유했다는 해석이 많다. 리베라와 자신이 서로에게 끌리며 존재하나 결코 만날 수 없는 운명을 의미한다는 견해도 있다.
이번에 낙찰된 그림은 리베라가 칼로의 친구였던 영화배우 마리아 펠릭스와 염문을 뿌리면서 느꼈던 그녀의 고통이 반영된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리베라의 이마에는 눈 하나가 더 그려져 있는데, 펠릭스를 의미한다는 해석이다. 반면 칼로는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다.
소더비의 라틴 아메리카 미술 책임자 안나 디 스타시는 "‘디에고와 나’는 칼로의 열정과 고통을 요약한 그림"이라고 했다. 그는 "오늘밤의 결과(남편의 그림 가치를 뛰어넘은 것)를 궁극의 복수라고 볼 수도 있다"며 "하지만 그보다는 칼로의 비범한 재능과 매력이 궁극적으로 검증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녀는 이미 남편에 대한 복수에 연연할 필요 없는 한 차원 높은 거장의 경지에 올라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작품을 낙찰 받은 사람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박물관 설립자인 에두아르도 F. 코스탄티니다. 구매자는 개인 소장을 목적으로 작품을 구매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림을 판매한 이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