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회사가 정한 월 운송수입금을 미납하거나 납입액이 적다는 이유로 택시 기사를 징계할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사납금제 폐지 이후 '운송수입금' 등 각종 대체 제도를 마련했던 택시 회사들에 경종을 울리는 판결로 보인다.
서울행정법원 제13부는 지난달 14일 택시기사 A가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청구한 '부당승무정지구제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이 같이 판단했다.
이 택시회사는 지난해 3월 원고 A에게 승무정지 7일의 징계를 내렸다. 징계 사유는 '운송수입금' 미납이었다.
회사는 지난해 1월 노동조합과 단체협약을 체결해 '운송수입금' 규정을 둔 바 있다. 월마다 내는 운송수입금(월 470만원)을 채울 경우 성과급을 주되, 반대로 여기에 못미치는 경우 최대 해고까지의 징계를 내릴 수 있다는 내용이다.
A는 징계가 부당하다며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지만, 경기지노위와 중노위 모두 구제신청을 기각했다. 이에 중노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법원은 "현행 여객자동차법은 운송사업자(택시회사)와 운수종사자(기사) 운송수입금 '기준액'을 설정하는 것을 불허하고 있다"며 "택시기사가 자발적으로 기준액을 정해서 납부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 점을 보면 강행규정으로 보인다"고 전제했다.
이어 "기준액을 설정하고 그 미납을 이유로 납입을 강제하는 행위는 엄격히 금지된다"며 "종래 사납금제처럼 금전적인 불이익을 가하는 것 외에도, 기사를 해고하거나 징계하는 등 불이익을 주는 것도 역시 금지된다"고 꼬집었다.
회사는 "적자를 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법이) 액수를 가리지 않고 기준액을 설정하는 것을 전면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운영 적자를 면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해도 기준액을 설정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만 기준액을 채우는 경우 성과급을 주거나, 채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성과급을 주지 않는 것 정도는 허용된다고 판단했다.
회사는 "노조와의 단체협약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현행법에 위반한 단체협약에 근거를 뒀기 때문에 무효"라고 판단해 A의 손을 들어줬다.
한편 현행 여객자동차법은 일정 금액을 회사에 납입해야 하고, 부족분을 기사가 메꾸던 관행인 '사납금제'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수입을 전부 회사에 입금하고 월급을 받는 형식의 전액납입제가 의무화 됐다.
이를 피하기 위해 사납금의 변형 형태인 '운송수입금' 등 기준액을 도입한 회사가 많다. 이번 판결에 따르면 기준액을 설정하는 것은 물론 기준액 미달로 인한 경제적 불이익을 주거나 징계 등 신분상 불이익을 주는 것도 불가능해 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택시기사의 업무특성상 사납금 제도 같은 일정한 장치 없이 회사가 근로자를 통제할 방법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법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불성실한 기사에 대해 회사가 아무런 제재를 가할 수 없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며 "기사가 차를 세워놓고 장시간 휴게를 취하는 등 성실하게 운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밝힐 수 있다면 징계사유로 삼을 수 있겠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고 지적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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