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선 연금만 가입해도 백만장자가 될 수 있다는데…[더 머니이스트-김두철의 보험세상]

입력 2021-11-19 07:31   수정 2021-11-19 09:50



대한민국은 빠른 국가경제발전 덕에 현재 풍요롭게 사는 국가 중 하나가 됐습니다. 나라의 경제지표는 선진국 수준으로 집계되고 있죠. 그러나 아직도 사회 구조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허술한 구석이 많습니다. 당장 드러난 문제는 노후대책입니다. 우리의 노인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우리의 인구구조나 사회 여건을 고려해 보면, 외국보다 노후 소득 문제를 풀기가 훨씬 어려운 형편입니다. 고학력 보편화로 학교를 오래 다니고, 남자의 경우 의무적인 군 복무로 늦은 나이에 취업 시장에 뛰어듭니다. 첫 직장에서 퇴직하는 한국인의 평균 나이는 54세에 불과하죠. 그런데 노동시장이 경직된 탓에 재취업은 어렵고, 자식 교육과 부모 봉양에 지출은 커집니다. 노후를 위해 자금을 축적할 수 있는 기간이 짧아지고 금액은 적어지는 구조입니다.

현재 국민연금이 1인당 평균 월 50만원 지급되지만, 머지않은 장래에 재원이 고갈돼 급여가 정지되거나 삭감된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합니다. 가입하지 않은 무연금자도 전체 대상자의 20%가 넘습니다. 일각에서는 국가 부채나 재정 누적 적자 수준이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라 세출을 늘려 복지를 강화할 수 있다고도 주장하지만,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가 획기적인 성장을 지속하지 않는 한 국가재정의 한계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 경고합니다.

현 상태가 이어진다면 우리 후손은 복지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소득의 30%에 해당하는 세금을 내야 할 것입니다.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다행히도 최근 미국의 브루킹스연구소는 개인이 연 퇴직소득을 1000달러 정도 늘려 놓는다면, 미국 연방정부나 주정부가 은퇴자 지원 프로그램에서 매년 수십억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결국 국가재정 상태나 사회환경의 변화 속에서 안정적인 노년기를 보내기 위해선 사적연금을 활용해 노후자금을 준비하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당국도 줄곧 국민의 노후 대비를 위해 사적연금을 활용한다는 기본정책을 펼쳐왔습니다. 그러나 더 적극적으로 국민을 사적연금에 가입하도록 하기 위해선 연금제도 다양화와 혜택을 늘리는 적극적인 유인책이 필요합니다. 모든 소득계층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말이죠. 가장 강력한 인센티브는 세제 혜택입니다.

제도적으로 혜택을 제공하는 사적연금으로는 퇴직연금과 연금저축이 있습니다. 세제 혜택은 가입단계, 적립단계, 수급단계로 구분 적용됩니다. 가입단계에서의 기본적인 세제 혜택은 퇴직연금과 연금저축 납부액에 대한 세액공제입니다. 만기가 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연금저축과 개인형퇴직연금(IRP)의 계좌로 전환하면 추가적인 세액공제도 제공됩니다. 최근에는 50세 이상이면서 종합소득이나 금융소득이 일정 금액 이하일 경우 자신의 계좌에 일정 한도까지 더 낼 수 있는 추가납부제도가 도입되기도 했습니다.

적립단계에서는 보험료 또는 기여금으로 인해 발생하는 이자소득에 대한 세금을 이연시켜 주는 혜택을 제공합니다. 이자소득을 여타소득과 합산해 과세하지 않는 것 자체가 연금제도에 주어지는 세제 혜택입니다. 물론 수급단계에서 지급되는 연금 액수에 따라 과세합니다. 이 경우 과세 대상이 되는 소득이 줄어든 상태이므로 상대적으로 낮은 세율이 적용돼 실질적인 절세가 완성됩니다.

수급단계에서 제공되는 퇴직소득세나 연금소득세 혜택은 연금소득에 대한 분리과세 대상의 범위와 금액을 조정하는 방법으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연 1200만원까지 사적 연금소득에 대해 3~5%의 차등 연금소득세가 부과되고, 1200만원을 초과 시 6~42% 종합소득세 대상이 됩니다. 연금소득세율을 차등화해 실질적으로 세율이 인하되도록 유도하고 있죠. 퇴직소득에 적용되는 공제 비율의 경우엔 퇴직소득 수준별로 차등해 연금화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작년부터는 연금 형태로 수급하면 퇴직소득세를 깎아주는 범위를 40%로 확대하기도 했습니다.

애석하게도 우리의 연금 세제는 연금보험시장을 확대하거나 연금제도를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연금저축 납입액에 대한 세제 혜택이 세액공제로 전환된 이후 중산층의 연금저축납입액이 감소했고, 저소득층의 연금저축 납부 중지 및 해약 건이 증가했습니다. 가입량 자체도 감소했습니다. 결국 세제 변경이나 혜택을 축소한 이후 모든 계층에서 연금저축 가입이 감소한 것입니다.

모든 OECD 국가에서는 연금 가입 시, 일반저축을 이용할 때보다 세금 부담 감소 효과가 큽니다. 우리도 세금 부담이 감소하는 효과가 나타나지만, 선진국과 몇가지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사적연금 기여금에 대한 공제 수준과 세제지원 비율이 OECD 주요국 평균보다 낮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여금의 액수가 적고, 세금도 적은 비율로 깎아줍니다.

우리 연금 세제의 문제는 기존 혜택을 축소해 제도 자체를 위축시킨다는 점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우선 소득세율의 구조적 문제가 큽니다. 다른 나라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근로자가 소득세를 내지 않습니다. 2019년에는 전체 근로자의 36.8%가 근로소득세 면세자였습니다. 이들에게 세제 혜택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세제의 근본 취지에도 변화가 생겨 걸림돌로 작용합니다. 고소득자에 대한 세제 혜택을 부자에게 추가로 주어지는 특혜로 간주합니다. 공평한 사회를 구현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에게 주어지던 세제 혜택을 축소하거나 없앱니다. 노후를 준비할 기회는 누구에게나 공평히 주어져야 합니다. 이미 경험했듯이 부자에 대한 제한적 조치는 모든 소득계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연금 세제는 몇십년 뒤 평안한 생활이 가능하도록, 연금 가입을 부추기도록 설계돼야 합니다.

미국에서 돈 잘 버는 개인사업자의 경우 세법에서 연금제도, 개인과 사업체 합 5만8000달러까지 기여금으로 인정해줍니다. 연금에만 가입해도 백만장자가 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이에 비하면 우리의 세액공제 금액은 너무 적습니다. 현재 공제를 받을 수 있는 최대 700만원으로 30세 직장인이 20년간 납입하고 10년 거치해 60세부터 연금 지급이 시작된다면, 대략 1년에 900만원 정도씩 연금으로 받습니다. 충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한경닷컴 The Moneyist> 김두철 상명대 명예교수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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