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8일 내년 예산에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반영해달라는 요청을 철회했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은 소상공인 손실보상 확대, 지역화폐 발행한도 확대와 함께 대표적인 ‘이재명표 정책’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이 우세한 데다, 초과세수 이연을 통한 재원마련이 어렵다는 당내 분석 및 청와대의 반대까지 겹치자 철회 쪽으로 급선회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후보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고집하지 않겠다”며 “야당이 반대하고 있고, 정부도 신규 비목 설치 등 예산 구조상 어려움을 들어 난색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이날 기자들을 만나 “상황이 어려운 소상공인을 신속히 지원해야한다는 대의가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이라는 방식 때문에 훼손될 수 있다”며 “저의 주장 때문에 소상공인에 대한 추가 지원이 지연되지 않도록 주장을 접는게 맞겠다는 생각”이라고 철회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날 결정의 배경에는 민주당이 그간 고수해왔던 초과세수 유예를 통한 재원 조달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당 정책워원회의 분석이 있다. 민주당은 지난 7월 이후 초과세수가 19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세금 납부를 내년으로 유예해 재난지원금 재원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이었지만 제도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재정당국의 반대에 부딪혔다. 민주당 정책위는 내부 검토를 거쳐 기재부의 의견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고 후보에게 이를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완주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긴급 간담회를 열고 “정책위 검토 결과 지방교부금 등을 고려하면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에 필요한 8~10조원을 초과세수 납부유예 방식으로 내년 본예산에 반영하기 어렵다는 것이 확인됐다”며 “추경을 통한 방식은 가능했지만, 오늘 보고를 받은 이 후보가 (재난지원금 지급 대신)소상공인과 손실보상 대상이 아닌 업종 지원에 사용했으면 좋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 여론도 이 후보의 ‘돈풀기’에 비판적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 5~6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0.1%는 ‘재정에 부담을 주기 때문에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지 말아야 한다’고 대답했다. 특히 민주당이 ‘이재명표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해 세금 납부 유예라는 기상천외한 꼼수를 들고나오고, 기재부에 대한 국정조사를 압박하는 등 잡음이 커지면서 부정적 여론이 더 확산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후보가 여론과 재정당국을 상대로 불리한 싸움을 이어가는 가운데 청와대는 사실상 기재부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분석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SNS에 홍 부총리가 작성한 ‘2021년 3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 글을 공유하며 “매우 기쁜 소식”이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 당정 간 갈등 와중에 홍 부총리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청와대 관계자는 “전 국민 재난지원금 철회는 이 후보 본인이 결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청와대가 관여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이 어렵다면 패키지의 나머지 공약인 소상공인 손실보상 확대와 지역화폐 발행한도 상향이라도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올해 7월 이후 추가세수가 19조원에 달하는 만큼 가용 재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며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도 50조원 내년도 지원을 말한 바 있으니 국민의힘도 반대하지 않을 거라 믿는다. 빚 내서 하자는 게 아니니 정부도 동의하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허은아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이 후보가 이제라도 고집을 꺾었다니 다행”이라며 “그러나 언제는 날치기로라도 처리해야 한다며 야당을 무시하다가, 궁지에 몰리자 여야가 머리를 맞대 달라고 하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전범진/임도원 기자 forwar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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