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찾은 인천 서구 검단신도시. 모래를 실은 트럭들이 흙먼지를 날리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공사현장에는 인부들이 열중한 채 작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유독 조용한 건설현장이 있다. 김포 장릉 경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공사 중지 명령이 떨어진 이른바 '왕릉 아파트' 건설 현장이다.
이 단지를 둘러싼 논란은 4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입주까지 1년도 채 남지 않았지만 문화재청과 건설사, 입주 예정자들은 마땅한 묘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논란에 휩싸인 '왕릉 아파트'는 검단신도시에 건설 중인 3개 건설사의 3400여가구 규모 44개동 가운데 19개동이다. 이 가운데 대광건영이 짓는 9개동(735가구) 중 9개동, 금성백조가 짓는 12개동(1249가구) 중 3개동(244가구)는 공사가 멈췄다.
김포 장릉은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이를 중심으로 반경 500m까지는 문화재 구역이다. 이 안에서 높이 20m 이상의 건물을 지으려면 문화재청의 심의를 사전에 받아야 한다. 해당 아파트 단지들은 각각 213m, 375m, 395m 떨어져 있는데, 이미 지상에서 93~97m까지 골조 공사를 마쳤다. 하지만 허가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입주는커녕 철거할 위기에 처했다.
이번 사태와 관련된 한 건설사 직원은 "극성인 입주 예정자들로부터 욕설에 협박성 폭언까지 들었다"며 "일정대로라면 내년에 입주를 해야 할 아파트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수분양자들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고 했다. 최근 입주 예정자들과의 간담회 이후 이런 험악한 분위기는 한층 누그러졌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또 다른 건설사 직원은 "입주 예정자들에게 이번 사태와 관련해 아파트를 철거하거나 그럴 계획이 없다고 정확하게 전달했다"며 "당장 이렇다 할 해결책은 없지만 입주 예정자와 문화재청 등과 교류를 통해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다만 입주 예정자 사이에서도 입장이 확연하게 나눠져 건설사가 대응하기 어려운 것으로 전해졌다.
3개 건설사 가운데 하나인 금성백조는 이번 사안의 문제점이 문화재청에 있다고 주장한다. 고시 대상 지방자치단체를 언급하면서 인천 서구청은 빠트린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이다.
금성백조 관계자는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는 구역의 토지가 인천시임에도 불구하고 고시에서 문화재청은 경기도, 김포시, 파주시, 양주시 등 문화재 소재지만을 관할 지자체로 언급하고 인천 서구청은 제외했다"며 "복수의 전문가들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고 했다.
문화재청은 뚜렷한 대안 없이 문화재위원회의 심의 결과를 바탕으로 적절한 행정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
김현모 문화재청장은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은 문화재 주변의 자연경관이나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뛰어나 문화재와 함께 보호할 필요성이 있는 지역"이라며 "문화유산의 올바른 보존과 관리를 담당하는 기관의 장으로서 이런 상황이 빚어지게 돼 안타깝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 문화재청 자문기관인 문화재위원회의 현상변경 심의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며 "문화재청에서는 문화재위원회 소위원회를 구성해 사안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향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 결과를 바탕으로 적절한 행정조치를 취하도록 하겠다"고 부연했다.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에서 이 단지의 입주 예정자라고 밝힌 A씨는 "입주를 얼마 앞두고 정말 날벼락을 맞았다"며 "외부인들은 철거하고 보상받으라고 얘기하는데 당장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는데 답답할 뿐"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입주 예정자 B씨도 "내 집 마련을 위해서 아파트 청약한 수요자들은 대체 무슨 죄인지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이 게시글을 쓴 청원인은 "세계문화유산 김포 장릉의 경관을 해치는, 문화재청 허가 없이 지어진 아파트의 철거를 촉구한다"며 "해당 아파트들은 문화재보호법상 문화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했으나 이를 받지 않고 지어진 건축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미 분양이 이뤄져 수분양자들에게 큰 피해가 갈 것이기 때문에 이 청원을 작성하면서도 마음이 무겁다"면서도 "세계에서 인정한 우리 문화유산을 건설사 및 지자체들의 안일한 태도에 훼손되는 이런 일이 지속한다면 과연 우리 문화가 계속해서 세계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우리 문화는 우리가 보호해야 한다"고 했다.
인천=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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