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지난 3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CJ 중기비전’을 발표했다. 이 회장이 임직원에게 사업계획을 직접 설명한 것은 2010년 후 11년 만이었다. 그리고 발표 후 불과 2주 만에 ‘10조원 투자 프로젝트’의 윤곽이 처음 드러났다.
CJ ENM은 19일 1조원을 투입해 미국 콘텐츠 제작사 엔데버콘텐츠를 인수한다고 밝혔다. 4대 성장 엔진 중 핵심 사업인 문화 사업에서 프로젝트가 먼저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CJ ENM은 같은 날 새로운 스튜디오 설립 소식도 알리며, 국내외를 잇는 대규모 자체 제작 시스템 구축 계획도 내놨다. 최근 뜨겁게 불고 있는 K콘텐츠 열풍과 맞물려 세계적인 콘텐츠 기업으로 거듭날 것이란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CJ ENM은 영화 ‘기생충’의 성과를 발판 삼아 세계 콘텐츠 시장의 중심지인 할리우드 진출을 적극 추진해 왔다. 엔데버콘텐츠 인수는 본격적인 글로벌 사업 확장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CJ ENM은 우선 ‘라라랜드’ 등 엔데버콘텐츠가 보유한 대량의 지식재산권(IP)을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CJ ENM 관계자는 “IP 유통은 물론 다양한 사업모델을 만들어 수익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며 “이 콘텐츠를 활용해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 진출을 앞두고 있는 ‘티빙’의 경쟁력도 강화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CJ ENM이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K콘텐츠의 유통과 현지 버전 제작도 함께 추진한다. 엔데버콘텐츠가 CJ ENM의 작품을 공동기획·개발하는 식이다. 강호성 CJ ENM 대표는 “엔데버콘텐츠의 기획·제작 역량과 CJ ENM의 K콘텐츠 제작 노하우가 결합해 시너지를 낼 것”이라며 “궁극적으로는 동·서양 문화권을 포괄하는 글로벌 콘텐츠 기업으로 도약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선 이미 CJ ENM이 높은 평판을 얻고 있다. 특히 ‘기생충’ 이후 미국 제작사들로부터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 개봉한 ‘엔딩스 비기닝스’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40여 편의 영화를 함께 만들고 있다. 기존 한국 흥행작인 ‘써니’와 ‘극한직업’은 각각 유니버설스튜디오, 제작사 하트비트와 리메이크하고 있다. 신작 ‘전생’도 할리우드 제작사 A24와 함께 만들고 있다. K팝을 소재로 한 ‘케이팝: 로스트 인 아메리카’(가제)는 영화 ‘인터스텔라’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의 제작자 린다 옵스트와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이 함께 프로듀서를 맡았다.
드라마로도 미국 시장 공략에 나섰다. 아이유가 출연한 tvN 드라마 ‘호텔 델루나’의 미국판을 ‘터미네이터’ ‘미션임파서블’을 제작한 스카이댄스와 공동 제작하고 있다. CJ ENM은 이를 시작으로 ‘사랑의 불시착’ ‘나쁜 녀석들’ 등 20여 편의 드라마 현지 버전을 미국에서 만들 계획이다.
CJ ENM은 앞서 2016년 드라마 사업부문을 물적 분할해 스튜디오드래곤을 설립했다. 스튜디오는 북미 영화시장에서 주로 발달한 모델로 CJ ENM이 이를 적극 도입했다. 기존에 방송사가 중심이 돼 드라마를 제작·편성한 것과 달리, 스튜디오는 자금 조달부터 기획·제작·유통까지 전 과정을 주도한다. 스튜디오드래곤은 이를 통해 ‘도깨비’ ‘미스터션샤인’ ‘사랑의 불시착’ 등 흥행작을 잇달아 탄생시켰다. CJ ENM은 스튜디오드래곤을 콘텐츠 기획을 하는 전문 스튜디오로 발전시키고, 신설하는 스튜디오는 다양한 장르에서 콘텐츠 융합을 시도하는 멀티 스튜디오로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지금까지 인수한 다수의 국내 제작사와의 시너지 효과도 극대화한다는 계획이다. CJ ENM은 모호필름, 문화창고, 밀리언볼트, 화앤담픽쳐스, JK필름 등을 잇달아 인수하며 몸집을 키워왔다. CJ ENM 관계자는 “CJ ENM의 스튜디오들이 콘텐츠 전략과 투자 계획을 수립하고, 산하 제작사들은 작품 제작과 크리에이터 육성 역할을 나눠서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