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1월 22일 08:40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SK와 LG , 한화 등 대기업그룹의 신주 발행이 최근 수년에 걸쳐 크게 늘어나면서 투자은행(IB) 업계에 판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변화는 강한 ‘커버리지그룹’을 보유한 금융지주 계열 IB의 주식발행시장(ECM) 영향력 확대다.
‘산업(industry)그룹’으로도 불리는 커버리지(coverage)그룹은 IB 내에서 고객을 직접 만나고 끌어오는 역할을 하는 영업인력 집단을 말한다. 핵심 영업대상은 회사채를 자주 발행하는 대기업그룹 계열사다.
22일 마켓인사이트 리그테이블을 보면, 커버리지 강점을 기반으로 국내 채권발행시장(DCM) 선두로 자리매김한 KB증권이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ECM에서 올해 1~3분기 누적 2위를 달리고 있다. 2018년부터 3년 동안 각각 5위, 4위, 3위로 한 계단씩 올라서더니 한국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마저 누르고 NH투자증권을 바짝 추격 중이다.
한 증권사 투자은행(IB) 사업 총괄 임원은 “대기업그룹의 유상증자와 기업공개(IPO)가 급증하면서 커버리지가 빛을 발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덕분”이라고 실적 개선 배경을 분석했다. 그는 “KB와 NH처럼 대기업 회사채 발행을 지원하는 강한 DCM 커버리지를 갖췄으면서, 대규모 거래 시 대출 혜택까지 제공할 수 있는 은행 뒷배를 지닌 하우스의 시장 지배력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신주 발행에 매우 소극적이었던 국내 대기업들은 최근 경영환경 급변에 대응하기 위한 유상증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올해 들어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등을 목적으로 무려 3조3159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한화솔루션은 태양광 사업 투자 등을 위해 1조3460억원어치 신주를 찍었다. 포스코케미칼은 양극재 생산시설 확충 등을 위해 1조2735억원을 주식 발행으로 조달했다.
주가 상승에 힘입어 대기업들의 IPO 창구인 유가증권시장 신규상장도 급증했다. 마켓인사이트 집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10월까지 유가증권시장 신규 상장 기업들의 공모금액은 약 14조800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작년 연간 공모금액 약 2조1000억원의 7배를 웃돈다.
한국 DCM 최대 고객인 SK그룹의 SK아이이테크놀로지, SK바이오사이언스를 비롯해 현대중공업, 롯데렌탈 등이 IB들에 상장 작업을 맡겼다.
KB증권에 이어 올해 1~3분기 DCM 2위의 커버리지 실력을 자랑하는 NH투자증권은 이중 SK바이오사이언스 상장을 단독대표로 주관했다. 현대중공업과 롯데렌탈 거래에선 공동대표주관사를 맡았다. KB증권은 다른 공동대표주관사와 비교해 빈약한 IPO 거래실적(트랙레코드)에도 불구하고 현대중공업과 롯데렌탈 거래에 참여했다.
한국 IPO 사상 최대인 10조원대 공모를 준비 중인 LG에너지솔루션이 상장하는 내년에는 KB증권이 2016년 KB투자증권-현대증권 합병 출범 이래 처음 ECM 1위에 오를 것이라는 게 IB 업계의 전망이다. 국내 증권사로선 유일한 대표주관사로 참여하고 있어서다.
한 대형 증권사 ECM 담당자는 “산업 재편 물결에 따른 대기업 신주 발행이 이어지면서 DCM 커버리지 역량을 갖춘 NH와 KB가 위력을 더욱 과시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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