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 기자] 기적(奇蹟), 가능성이 매우 희박해 기대하기조차 힘들거나 아예 불가능한 일이 실제로 눈앞에 일어나는 경우를 의미한다.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자신만의 가치관과 포부를 통해 전개해나가는 그런 순간, 그것을 우리는 기적이라고 부르며 실현하고자 한 걸음씩 내디딘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기적이 없다고 여기며 살아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믿으며 살아가는 것이죠”
유명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 설명한 것처럼 기적을 앞둔 우리들의 자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전자의 경우엔 일말의 여정조차 그 가능성을 포기한 채 두드리지 않는 모습인 반면, 후자의 경우 주어진 악조건 속에서도 묵묵히 미래의 신념을 짊어지고 가는 것.
그런 의미에서 배우 서지연은 놀랄 만큼이나 무한한 신념으로 새 삶을 그려낸 장본인이다. 세 번의 유산이라는 큰 아픔을 겪었음에도 낙담하지 않고 지금의 딸을 마주했다. “아기와 만난 이후로 우리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어요” 선물 같은 기적, 기적 같은 선물인 딸. 새 가족과 함께한 서지연은 촬영하는 내내 행복하고 싱그러운 얼굴이었다.
Q. 아기와 함께 하는 화보 촬영인 만큼 더욱더 뜻깊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화보 촬영에 임했다.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만 더 남았다면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었을 텐데 그 부분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그래도 카메라 앞에 서서 그런지 몰라도 다시 현장에 돌아온 기분이었다. 배우는 카메라 앞에서 가장 기분이 좋다는 말이 있지 않나”
“딸과 함께 촬영했다는 부분도 정말 뜻깊었다. 사실 아기한테 무리한 환경이지 않을까, 다치진 않을까 걱정도 됐지만 다행히 남편이 촬영장에 함께 와줘서 안정감이 들었다. 딸과의 좋은 기억을 사진 한 장 한 장으로 남겨놓는 느낌이었기 때문에 더 감사한 마음이었다”
Q. 시험관을 통해 얻은 아기인 만큼 애틋함이 더욱더 클 듯한데 힘든 부분은 없었는지
“물론 엄청 힘들었다. 시험관 시술을 진행하면 무조건 아기를 가질 수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지금의 딸은 7번의 시험관을 통해 어렵게 얻은 아기다. 사실 그 시술 자체가 매우 힘든 과정이긴 했지만 아기를 만날 수만 있다면 내 몸이 어떻게 되어도 난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3명의 아이를 유산하고 천국으로 보내고 나니 마음이 너무 아프고 힘들더라. 지금의 아기를 만나기까지 4년이 걸렸는데 그 기다림 또한 쉽게 다가오진 않았다. ‘내가 이렇게 기다린다고 아기가 찾아올까?’ 걱정도 됐다. 그렇게 거의 포기하는 심정으로 도전하게 됐는데 그때 딱 지금의 아기를 만나게 된 거다. 정말 내게 기적 같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Q. 남편은 그 과정에서 어떤 마음을 가졌을까
“사실 남편은 아기 없더라도 우리끼리 행복하게 살아도 된다는 생각이었지만 내가 아기를 너무 좋아하고 새로운 가족에 대한 꿈이 컸기 때문에 그 마음을 받아들이게 됐다. 하지만 시험관 과정을 겪으며 (내가) 너무 힘들어하니 이제 그만하자고 타이르더라. 아무래도 내 몸이 점점 약해지는 것을 보고 걱정했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은 ‘딸 바보’가 되어서 나보다 더 아기를 사랑한다(웃음)”
Q. 출산 후 삶에 있어서 어떤 부분이 가장 달라졌는지 궁금하다
“내 삶, 남편의 삶 모두 송두리째 바뀐 느낌. 처음 한 달 정도는 아침에 일어나면 적응이 안 되어서 ‘이건 꿈일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우리는 둘 다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하루에 한 편은 챙겨볼 정도인데, 지금은 아기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칠까 봐 TV 전원도 켤 수가 없다. 집에서도 엄청 조그만 목소리도 대화한다(웃음). 평소의 나는 여유가 있을 때 운동을 하거나 피부 관리를 하는데, 지금은 그럴 여유 없이 육아 활동에만 전념한다. 정말 다른 세계에 딱 떨어졌다고 해야 할까. 처음에는 육아 활동에 적응이 안 되어서 너무 정신없었지만 이제는 우리 모두 익숙해졌다”
Q. 본인이 생각했던 ‘엄마의 삶’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
“사실 처음엔 그저 단순하게 ‘아기가 생겼으면 좋겠다’, ‘우리를 닮은 아기가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마음뿐이었다. 그 이후의 육아 활동도 엄마에게 정말 중요한 몫인데 말이다. 그저 아기가 있다고 해서 엄마인 게 아니라, 내 아이를 위해 좋은 교육과 가치관을 심어줄 수 있어야 비로소 엄마가 되는 것이다. 그때까지 포기해야 할 것도 많고, 참아야 할 것도 무수히 많겠지만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Q. 연기에 대한 열망은 여전히 유효하게 남아있나
“물론이다. 그 생활을 20년 넘게 꿈꾸고 이어온 만큼 연기에 대한 열망은 여전히 깊고 뜨겁다. 100세 시대인 요즘, 아직 인생의 반도 안 보낸 것 아닌가. 남은 생은 또 다른 내 길을 찾아가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은 육아 활동을 위해 잠시 멈춘 상태이긴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른다면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볼 예정이다”
Q. 2005년 MBC ‘제5공화국’을 시작으로 MBC ‘환상의 커플’, MBC ‘메이퀸’, KBS1 ‘미워도 사랑해’ 등 정말 많은 작품을 경험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MBC의 세 작품인 ‘내 이름은 김삼순’과 ‘동이’, ‘골든 타임’. ‘내 이름은 김삼순’ 같은 경우에는 데뷔한 지 얼마 안 됐는데도 불구하고 고정 캐릭터를 맡아 매일 출근하게 돼 신기했던 작품이다. ‘동이’도 인상 깊었다. 당시 ‘동궁전 상궁’ 역을 맡았는데 드라마가 잘 되어서 다 함께 발리로 여행 갔던 기억이 있다. 덧붙여서 ‘골든 타임’ 때는 이전보다 큰 주목을 받을 수 있어서 기뻤던 작품이다”
Q. 앞으로는 어떤 역할을 맡고 싶은지
“그간 다양한 역할에 도전해봤지만 로맨스 코미디 쪽에는 기회가 거의 없었다. 대부분 악랄한 성향의 역할이었던 것 같다(웃음). 이제는 쾌활하거나 유머러스한 역할도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 미워할 수 없는 그런 엉뚱한 역할”
Q. 남편이 작곡, 작사 활동을 꾸준히 이어온 고병식이다. 같은 연예계에 있었다 보니 통하는 부분도 많았을 것 같다
“맞다. 내가 작품에 돌입할 때 새벽에 촬영 나갈 때도 많았는데 그런 부분도 폭넓게 이해해주더라. 가끔 슬럼프 때문에 낙담할 때도 ‘연기하는 모습이 가장 멋진 사람’이라며 한결같이 응원해준다. 그 말에 엄청난 에너지를 받곤 했다”
Q. 남편과는 10년 연애 후 결혼하게 됐다고. 연애 도중 ‘이 사람이다’ 싶은 순간이 있었나
“만난 지 한 달도 안 되어서 ‘이 사람이다’ 싶었던 것 같다. 우리 엄마도 남편을 보고 ‘따스한 안방 같은 사람’이라고 말해주더라(웃음). 그만큼 사람 자체가 따뜻하고 포근한 성격이다. 10년 동안 연애를 하며 서로 싸우고 흔들리는 와중에도 ‘결혼은 이 사람과 해야겠다’라는 마음은 변치 않았다(웃음). 그렇게 결혼한 이후엔 또다시 새로운 모습이 발견된다. 함께 살 때와 안 살 때의 느낌은 또 다르지 않나. 다시 한번 티격태격하며 맞추고 나니 이젠 어느 정도 합이 잘 맞는다. 서로 눈빛만 보면 지금 어떤 기분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Q. 과거부터 봉사 활동을 쭉 이어오지 않았나. 활동 중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사실 어느 한 순간 할 것 없이 모든 부분에 있어서 특별한 경험이다. 처음 아기를 가졌을 때처럼 봉사 활동을 시작할 때도 서투름의 연속이었다. ‘봉사’라고 하면 막연히 남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다가 아니더라. 무조건 도와주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방향성을 잡아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은 아이티에 봉사하러 갔을 때. 좁은 한국에서만 있다가 아이티라는 해외를 가보니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들이 너무나 많은 거다. 그 시간을 통해 우리보다 힘든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돕는 가치를 더욱더 깊게 배웠던 것 같다. 봉사 활동을 하면서 가장 감사한 부분은 힘든 사람들을 도우며 내 모난 모습을 갈고 닦을 수 있다는 점. 아직도 부족한 부분은 많지만 봉사 활동을 통해 점점 더 좋은 어른이 되어간다고 느낀다”
Q. 아기를 낳고 엄마가 되지 않았나. 아기에게 어떤 엄마로 남고 싶은지 궁금하다
“힘들게 얻은 아이인 만큼 올바른 가치관을 갖춘 사람으로 잘 이끌어주고 싶다. 본인이 받은 사랑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 좋은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게 도와줄 생각이다”
Q. 2018년 인터뷰 중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아기를 갖고 싶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목표를 이룬 지금,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
“정말인가(웃음)? 전혀 기억 못 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정말 감사한 일이다. 또 다른 목표가 있다면 앞으로도 건강하고 젊은 삶을 가꿔가는 것이다. 늦게 얻은 아기의 미래를 지켜보기 위해선 그게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덧붙여서 아이에게 따뜻하고 사려 깊은 엄마로 남고 싶다. 그리고 추후 상황과 여건이 된다면 연기자 활동을 통해 멋있고 능력 있는 엄마로 다시 돌아올 예정이다”
에디터: 박찬
포토그래퍼: 서영록
의상: 올세인츠, 데일리 미러, 카미노
주얼리: 민휘아트주얼리
스타일리스트: swey
헤어: 코코미카 시호 디자이너
메이크업: 코코미카 미혜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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