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올림푸스는 사장이 된 지 반 년 된 마이클 우드퍼드를 해임한다. '일본의 기업문화를 모른다'는 게 이유였다. 앞서 올림푸스는 '다른 문화에 대한 섬세한 이해력에 감명을 받았다'면서 우드퍼드를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갑자기 태도가 바뀐 건 올림푸스가 20년 간 감춰온 비밀을 우드퍼드가 들췄기 때문. 이후 올림푸스는 전무후무한 분식회계가 밝혀지며 상장폐지 위기를 맞는다.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영국인 사장을 내쫓고 치부를 감추기 급급했던 올림푸스는 지금, 행동주의 펀드 소속의 미국인 사외이사를 받아들여 환골탈태에 성공했다. 깔끔해진 지배구조 위에 내시경사업이 흥하며 주가도 사상최고치를 경신했다.
올림푸스는 1919년 현미경 회사로 출발했다. 현미경 렌즈를 만들던 기술로 1936년 카메라를 개발해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카메라 브랜드로 유명해졌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매출 대부분은 내시경 기계를 팔아 올린다. 1950년 세계 처음으로 실용 가능한 위 내시경을 발명한 올림푸스는 현재 소화기 내시경 분야에서 세계 점유율 70%를 차지하고 있다. 이 사업은 '환자의 위를 볼 수 있는 카메라를 만들어 달라'며 동경대병원 의사가 올림푸스를 찾아온 것을 계기로 시작됐다. 지금도 의사와 함께 개량을 지속하고 있어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탄탄한 사업에도 불구하고 올림푸스의 속은 분식회계로 썩어가고 있었다. 1985년 대일 무역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은 일본 엔화의 평가 절상을 유도하는 '플라자합의'를 체결한다. 이후 엔화 가치가 반토막이 나면서 올림푸스의 수출실적도 타격을 입었다. 올림푸스는 파생상품에 눈을 돌렸다. 자산가치 버블에 올라타 타격 입은 수출 실적을 만회해보자는 의도였다. 그러나 버블이 곧 꺼지면서 올림푸스는 1990대 초반부터 거액의 손실을 안게 된다. 그리고 20년 간 사장 등 몇 사람이 쉬쉬하며 회계장부를 조작하며 총 17억달러 규모의 손실을 숨겼다.
2011년 사장이 된 우드포드는 매출도 없는 회사를 10억달러나 주고 인수하는 올림푸스를 수상하다 여겼다. 그는 인수 금액이 부당하며 과정이 투명하지 않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회장단 퇴진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사회는 오히려 우드포드를 경질했다. 양측의 대립을 계기로 올림푸스는 그동안 지불해왔던 거액의 인수 자금이 사실은 파생상품 투자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쓰여졌다는 사실을 밝힌다. 600엔이던 주가가 상장폐지 위기에 몰리며 두 달 만에 100엔까지 주저앉았다. 동경증권거래소는 본업(내시경)이 여전히 탄탄하고 분식회계는 극히 일부의 경영진만 알고 있었다는 이유로 상장은 유지시켰다.
올림푸스는 행동주의 펀드와 손잡고 내시경 사업은 강화시키고 나머지 사업을 다 정리하는 방법을 택했다. 지난 1월엔 적자 사업인 디지털 카메라 사업을 매각했고, 지난 5일엔 올림푸스의 시작이었던 현미경 사업까지 접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난해 기관지 내시경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미국 '베란 메디컬 테크놀로지스'를 350억엔을 들여 인수했고, 지난 5월엔 전립선비대증 치료기구를 만드는 이스라엘의 '메디테이트'를 270억엔으로 매수했다. 대형 M&A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55억엔으로 기업형 벤처캐피탈(CVC)을 미국에 설립해 인공지능(AI) 등 미래 의료현장에 도움이 될 수 있을 만한 곳의 투자도 검토 중이다.
과거를 털어낸 올림푸스는 올해 사상 최대 실적으로 재도약하고 있다. 지난 7~9월 매출은 전년 대비 23% 늘어난 2215억엔, 영업이익은 83% 늘어난 486억엔을 기록했다. 적자사업을 다 정리한 데다 코로나 확산이 잦아들면서 내시경 치료가 늘어난 덕이다. 그러면서 올해 순이익이 전년 대비 8배 증가한 1090억엔이 될 것이라고도 밝혔다. 예상대로라면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게 된다. 의료분야 실적 역시 최대 실적을 전망했다.
증권가도 잇따라 목표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지난 5일 실적 발표 후 모건스탠리, 노무라증권, 메릴린치 등 6곳의 증권사가 목표가를 끌어올렸다. 이들의 평균 목표주가는 3508엔이고 모두 매수를 추천했다. 모토야 코타니 노무라증권 연구원은 "유럽에서 대장암 스크리닝 검사가 증가하며 내시경 수요가 늘고 있다"며 "앞으로도 대장 내시경 수요는 호조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슬기 기자 surug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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