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는 지난 2일 고용안정위원회를 열고 내년부터 미국 앨라배마 공장에서 GV70 전기차를 생산하기 위해 노조와 협의 중이었다. 미국 전기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내고 있는 GV70를 앞세우겠다는 전략이었다. 제네시스는 지난달 5300대 팔리며 미국 진출 이후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평균 판매가격도 6만달러대로 올라서 렉서스를 넘어섰다. ‘고급차’ 반열에 올랐다는 평가다. 현대차는 노사 단체협약에 따라 국내 생산 모델을 해외에서 만드려면 노조 동의가 필요한데, GV70 전기차는 미국에서 처음 생산해 이런 제약에서도 자유롭다.
하지만 큰 걸림돌이 생겼다. 미국 하원이 최근 노조가 있는 미국 공장에서 생산한 전기차에만 4500달러(약 530만원)의 추가 세제 혜택을 지급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다. 미국은 현재 전기차를 구매하면 보조금 성격으로 7500달러(약 890만원)의 세액 공제를 해준다. 여기에 또 4500달러를 깎아주겠다는 것이다. 미국 완성차 업체인 제너럴모터스(GM), 포드, 스텔란티스를 제외하면 현대차, 도요타 등은 노조가 없다. 경쟁 차종보다 500만원 비싸지면 가격 경쟁력에서 크게 뒤쳐지게 된다. 전기차 추가 세제혜택 법안 시행 여부는 이제 미국 상원의 결정만 남아 있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미주권역담당 사장이 최근 오토모티브뉴스와 한 인터뷰를 보면 현대차가 처한 딜레마가 드러난다. 무뇨스 사장은 “4500달러 차이는 너무 크다”며 “미국 내 전기차 생산을 위한 투자에 의문이 제기된다”고 말했다. 이어 “(투자) 결정을 내리기 전, 보다 신중해야 하며 향후 (정책 방향)을 기다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2030년까지 전기차 점유율 40~50%를 달성하겠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계획에 동참하고 싶지만, 우리는 일단 기다려봐야 한다”고도 했다. 현대차그룹이 지난 5월 전기차 직접 생산 등을 위해 미국에 74억달러(약 8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힌 계획 등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수 있다는 강수를 둔 셈이다.
자동차 업계에선 전기차 확대전이 업체간 경쟁이 아닌 국가간 전쟁으로 비화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포드와 GM 공장에 찾아가 전기 픽업트럭을 탄 채 “멋진 차”라고 엄지를 추켜세우는 모습도 ‘바이 아메리카’를 부추기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도요타는 이례적으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등 주요 일간지에 “환경·노동자·소비자 갖고 정치 플레이하지 말고, 모든 미국 자동차 노동자를 공평하게 대우하라”는 전면 광고를 내기도 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전기차 보급 계획을 달성하고, 기후 변화에 대응하려면 차별적인 보조금 정책을 펴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