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후 음악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어요. 사람들 마음을 보듬어주는 음악의 힘을 발견했죠. 그 에너지를 공연으로 전하고 싶습니다.”
이날 공연에서 백혜선은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익숙한 레퍼토리들을 연주한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4번(월광)’, 차이콥스키의 ‘사계’ 중 3월, 5월, 6월, 10월 등 네 곡을 1부에서 연달아 들려준다. 2부에서는 라벨의 ‘라 발스’와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선사한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대중적인 곡들이다. 백혜선은 “지난해 12월 팔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고 나서 오랜만에 나서는 독주회”라며 “관객들이 저의 연주를 들으며 일생을 되돌아볼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짰다”고 설명했다.
공연을 풀어가는 방식도 독특하다. 곡의 소재가 된 그림이나 시를 보여주며 백혜선이 직접 해설한다. 절친했던 화가 빅토르 하르트만의 부고를 접한 무소륵스키가 친구의 유작을 소재로 작곡한 전람회의 그림을 연주하며 하르트만의 작품을 소개하는 식이다. 백혜선은 연주할 곡들이 자신에게도 뜻깊다고 했다.
“열네 살 때 처음 미국으로 가서 방황할 때 지도교수님이 추천해주신 책이 푸시킨의 시집이었어요. 여러 구절 중에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는 부분이 눈에 들어왔어요. 삶이 주는 고통을 견디게 해준 문장이었죠. 푸시킨에게 영향을 받은 차이콥스키의 사계를 꼭 들려드리고 싶었어요.”
백혜선은 1989년 미국 윌리엄카펠 콩쿠르에서 우승한 다음 해 곧장 영국 리즈 콩쿠르에서 입상했다. 세계 3대 콩쿠르에서도 큰 성과를 내 이름값을 높였다. 퀸 엘리자베스콩쿠르에선 2위를,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선 한국인 최초로 1위 없는 3위에 올랐다. 한국 피아니스트들이 거대한 장벽처럼 느끼던 콩쿠르의 문을 열어젖힌 주역이다.
현재 대구가톨릭대와 미국 뉴잉글랜드음악원 교수로 일하는 그는 2017년부터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에 도전해왔다. 지난해 피아노 소나타 29번과 30번으로 완주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19로 취소했다. 그는 “지금 시대가 위안을 원하고 있는데 내 욕심만 앞세워 무리하게 완주하고 싶진 않았다”며 “내년에 팬데믹이 안정되면 베토벤 대장정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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