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4일 각 상임위원회의 여당 소속 위원장과 간사들을 불러놓고 “야당과 합의가 안 되면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에 법안을 태우라”며 입법 속도전을 주문했다. “국민 앞에 반성하겠다”며 무릎을 꿇고 큰절을 한 이 후보는 여당 의원들을 향해 “국민의 어려움에 민감하게 책임지지 못했다”고 강하게 질책했다. 민주당 사무총장과 정책위원회 의장, 수석대변인 등 핵심 당직자들은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며 일괄 사퇴 의사를 밝혔다. 국민의힘은 “추진력과 전체주의는 종이 한 장 차이”라며 이 후보를 비판했다.
그는 “압도적 다수 의석은 장애물이 생기면 넘으라고 국민이 준 것”이라며 “패스트트랙 등 제도를 활용해 정기국회에서 처리할 수 있는 현안은 신속하게 책임처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야당이 반대하면 민주당 단독으로 법안을 강행 처리해야 한다고 요구한 것이다. 이 후보는 주요 법안을 △여야 합의 처리 △상임위 표결 처리 △패스트트랙 지정 안건 등으로 분류해 입법 목록을 만들자고 했다. 그는 “야당이 발목을 잡으면 뚫고 나가야 한다”고 했다.
이 후보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확대하는 내용의 하도급법 개정안에 대해 “당론으로 손해배상액 최저선을 정한 뒤 협상이 안 되면 처리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자영업자 지원과 관련한 가맹사업법에 대해선 “또 지연되면 그냥 신속 처리하는 걸로 정해야 저 사람들(야당)이 반대 안할 것”,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은 “1번(패스트트랙 처리) 사안으로 깔끔하게 정리하고 가자”고 했다. 중소기업 협상권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은 “이해관계가 충돌해서 끝까지 합의 안될 거다. 책임 처리(단독처리)해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부동산 개발이익환수 3법과 8세 미만 아동에게 월 50만원을 지급하는 아동수당법, 고위공직자 부동산 취득심사제가 담긴 공직자윤리법 등도 주요 추진 법안에 포함됐다.
회의 내내 이 후보의 다그침이 이어졌고, ‘독주’를 우려하는 의원들의 목소리까지 그대로 생중계됐다. 이 후보가 “패스트트랙에 다 태워버리지 뭐” “단독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하자니까?”라면서 채근하자 국방위 여당 간사인 기동민 의원은 “이재명의 민주당이 이렇게 다 밀어붙이는 거 아니냐는 불협화음에 대한 공포감도 있을 수 있다”며 “좀 더 정리된 형태의 논의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원내에서 상의할 시간을 달라”고 반발했다.
이에 이 후보는 “우리 위원장님과 간사님들이 부담스럽거나 불편하실 수도 있을 것 같다”며 “하지만 부모가 자식을 야단치면 ‘노력할게요’ 하지 않고 ‘쟤가 더 나쁜데 왜 나한테만 그러냐’고 하면 더 혼내야 한다”고 맞섰다.
입법 드라이브와 함께 ‘이재명 색채’로의 탈바꿈 작업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핵심 당직이 이 후보 측근 의원들과 실무진을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 후보는 “대선 승리를 위해 내려놔주신 용단에 감사하다”며 “국민의 기대에 충족하도록 당대표에게 (후속 인선) 의견을 전하겠다”고 했다.
야당은 ‘이재명 독재’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은 “민주주의란 누군가를 세워 그 1인을 위해 움직이는 게 아니듯이 당 또한 당원들의 뜻과 결의가 모여 정체성을 결정한다”며 “대화와 협상을 제치고 패스트트랙을 주문하는 이재명의 민주당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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