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깎고 파도가 빚은 절경

입력 2021-11-25 16:46   수정 2021-11-26 02:07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꽃 피는 숲에 저녁노을이 비치어 구름처럼 부풀어 오른 섬들은 바다에 결박된 사슬을 풀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싶었다.”
섬을 다룬 수많은 소설을 읽었지만 김훈의 첫 문장만큼 아름다운 표현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대청도를 바라본 느낌은 딱 그랬습니다.
겨울 초입의 쓸쓸한 풍경 속에서도 마치 꽃이 피듯 화사한 풍경이 피어납니다. 한반도의 서쪽 끝 대청도는 쉽게 갈 수 없는 곳이지만 막상 섬에 발을 디디면 황홀한 풍경에 사로잡혀 버립니다.
한 해를 마감하는 시간이 벌써 한 달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쓸쓸하다면 섬으로 향해보세요. 따스한 위로가 여러분과 함께할 겁니다.
해안사구가 이룬 한국의 ‘사하라 사막’

바다는 쉽사리 섬을 허락하지 않았다. 대청도로 향하는 배는 쉴 새 없이 위아래로 흔들렸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뱃길을 따라 4시간을 가니 쪽빛처럼 파란 바다가 마중을 나왔다. 인천에서 북서쪽으로 202㎞나 떨어진 외로운 섬 대청도(大靑島)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어서 예로부터 권력에 밀려난 이들을 품어온 유배의 섬이기도 했다. 대청도는 옛 원나라의 유배지이기도 했는데 원나라의 마지막 황제이자 고려 출신 공녀를 황후(기황후)로 삼았던 혜종(토곤테무르)이 황태자 시절 2년가량 이곳에 유배되기도 했다고 한다.

대청도 여행의 시작점은 선진포선착장에서 3.5㎞ 떨어진 옥죽포 모래사막이다. 밀물에 밀려와 썰물 때 햇볕에 바짝 마른 모래가 이룬 해안사구가 이국적 분위기를 연출해 한국의 ‘사하라 사막’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다. 옥죽포 해안사구는 인근 옥죽동 농여해변에서 날아온 모래가 수만 년에 걸쳐 쌓여 이뤄진 신의 걸작이다. 과거에는 모래사장의 규모가 컸으나 30여 년 전 소나무 방풍림이 조성되면서부터 모래사장 규모가 5분의 1로 줄어들었다.
화성 풍경처럼 이색적인 농여해변

대청도에는 굳이 옥죽포 모래사막이 아니어도 모래와 관련된 이야기가 곳곳에 널려 있다. 과거 대청도에서 여자아이가 태어나 혼기가 차면 ‘모래 서 말은 먹어야 시집을 간다’는 말로 동네 어른들이 놀리곤 했다고 한다. 집안에 하도 모래가 많아 빨래할 때, 밥 지을 때, 반찬 만들 때마다 모래가 섞여 들어가 알게 모르게 먹었기 때문이다.

모래와 관련된 또 다른 곳은 대청 4리에 있는 사탄동(沙灘洞)이다. 한자를 풀면 ‘모래 여울마을’이지만 악마를 뜻하는 ‘사탄’으로 들리는 게 싫어서 주민들이 옹진군에 모래여울마을로 바꿔달라고 청원했다고 한다.

대청도 해안가로 내려오면 농여해변에서 백령도까지 이어지는 모래풀등을 만날 수 있다. 모래풀등은 간조 때 바닷속에서 하루 두 번 드러나는 모래섬이다. 풀등을 품은 농여해변은 대청도의 8개 해변 중 가장 아름답고 이색 볼거리가 가득한 곳이다. 해변에 줄지어 선 기암괴석이 그중 하나다. 풍화작용으로 표면이 나무의 나이테 질감을 지닌 ‘나무테 바위’는 자연의 경이로움 그 자체다. 수심이 얕아지는 썰물 때에는 미아동 해변까지 해안가를 따라 걸으며 멋진 자연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다.

밤이 되면 농여해변은 또 다른 아름다움을 내뿜는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 뭇사람을 감성적 존재로 만드는 아름다운 노을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어 해가 지고 완전한 어둠이 찾아오면 ‘별이 쏟아지는’ 해변을 감상할 수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해변이 저녁해를 받아 붉게 물드는 장관을 넋 놓고 바라봤다. 지구가 10억 년 세월을 들여 지켜온 풍경은 마치 영화에서나 봤던 화성의 모습과 닮았다.
삼각산서 서풍받이까지 명품 트레킹 길
대청도는 걷기여행지로도 최적이다. 매바위 전망대를 출발해 삼각산 정상을 찍고 광난두로 내려와 서풍받이를 돌아 나오는 7㎞ 코스를 삼각산의 ‘삼’, 서풍받이의 ‘서’를 따서 ‘삼서 트레킹’이라고 부른다. 대청도가 자랑하는 대표적인 걷기 길이다. 매바위 전망대에 오르면 남서쪽으로 모래울 해변과 독바위 해변, 대청도의 보물 서풍받이(중국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주는 수직 바위 절벽)를 조망할 수 있다. 매바위 전망대에서 삼각산 정상까지는 큰 어려움 없이 오를 수 있다.

삼각산 능선에서 모래울해변과 서풍받이로 이어지는 대청도 서쪽 해안의 모습을 내려다보니 영락없이 날개를 펼친 매의 형상이다. 서해의 거센 바람을 막아 준다는 서풍받이가 매의 머리라면 광난두해안이 왼쪽 날개, 모래울 뒤편 울창한 송림이 오른쪽 날개가 되는 셈이다. 서풍받이는 지명에서 알 수 있듯 서쪽에서 몰아치는 바람과 파도를 막는 기암절벽이다. 대청도 서쪽 끝에 있다. 깎아지른 해안절벽은 대청도 제1경으로 꼽힌다.

대청도=글·사진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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