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9903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RNA를 구성하는 염기 숫자다. 이 염기 설계도는 바이러스가 복제될 때마다 조금씩 바뀐다. 바이러스 변이다. 생물학적으로 당연한 과정이지만 진화 방향에 따라 인류엔 더 큰 피해를 남길 수 있다. 각국이 신종 변이 등장에 긴장하는 이유다.
2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보건부 등에 따르면 '뉴' 변이(B.1.1.529)는 RNA 설계도의 58군데가 초기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달랐다. 이 중 35개 변이는 바이러스가 인체에 침투할 때 활용하는 스파이크 단백질을 만드는 곳에 집중됐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확대되면서 코로나19가 백신 예방효과를 피하는 방향으로 진화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케빈 매카시 피츠버그대 교수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바이러스 진화의 티핑 포인트(급격한 변화지점)에 가까워졌다"며 "면역 공격을 피하고 백신 효과를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뉴 변이는 바이러스를 무력화시키는 중화항체 설계 부분이 19군데 바뀌었다. 바이러스가 세포 안에 들어갈 때 활용하는 부분은 물론 복제력과 치사율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진 변이도 포함됐다.
바이러스 유전자가 바뀌면 자칫 기존 코로나19 검사법으론 환자를 식별하기 어려워질수도 있다. 환자 몸속 바이러스 유전자를 토대로 확진 여부를 판가름하고 있어서다. 다행히 뉴 변이 환자도 기존 검사법으로도 식별할 수 있다는 게 남아공 측의 설명이다.
뉴 변이 이전까지 세계보건기구(WHO)가 관심·우려 변이로 분류한 것은 12개에 이른다. 올해 1월 콜롬비아에서 등장한 뮤 변이가 마지막이었다. 지난해 영국에서 등장한 알파와 인도 등에서 번진 델타 이후 아직 우세종으로 번진 것은 없다.
세계 인구의 53%가 코로나19 백신을 한 번 이상 맞았다. 백신 접종이 전파 속도를 늦추는 효과를 냈지만 모든 변이를 차단하는 것은 아니다. 데이터분석회사 엔퍼런스의 벤키 순다라라잔 수석과학자는 "백신 접종 드라이브가 바이러스를 유전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을 것"이라며 "면역을 피하는 회피변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했다. 코로나19 백신이 꼭 필요하지만 접종자가 늘면 변이 모니터링도 강화해야 한다는 의미다.
올해 확산을 주도한 델타 바이러스 외에 다른 변이가 유행하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 바이러스의 전파력이 지나치게 높아 다른 변이가 이를 뛰어 넘긴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프랑수아 발루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유전학연구소장은 "코로나19 전파력이 지속적으로 급등하는 것 대신 10년 간 면역 체계를 우회하는 느린 진화 패턴에 들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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