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와중에 장염에 걸려 기어이 먹은 것을 토해냈다. 새벽에 자다가 깨어 토악질을 하면서 더럭 겁이 났다. 뭔가 큰 이상이 생긴 게 아닐까. 그날 밤 잠을 설쳤다. 다음 날이 되자 강박증이 생겼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잠을 설쳤다. 그러자 몇 년간 나타나지 않았던 내 오랜 친구 공황증이 댐을 허물기 시작했다. 비교적 마인드 컨트롤을 잘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자라나는 불안을 향해 친구야 하며 토닥여도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무너지는 몸 앞에서 소용없었다. 결국 재앙적 사고의 연쇄에 빠지기 시작했고, 새벽녘 비참한 기분으로 몇 년 전 먹다 비상시에 쓰려고 남겨둔 안정제를 다시 꼴깍 삼켰다.
내 나이 마흔아홉. 아홉수를 낮은 포복으로 건너고 있다. 마음이 한없이 낮아지고 여려져 그저 이 불안증만 가라앉았으면 하고 빌었다. 며칠이 지나자 약이 몸에 길을 냈고 불안을 밀어냈다. 보름 정도 입맛이 없어 제대로 못 먹었더니 살도 좀 빠졌다. 몸이 가뿐해졌고, 자세를 바르게 한 덕분에 허리 통증도 거의 사그라들었다. 소변보기도 편해졌고 눈과 머리도 맑아졌다. 이제 저물어가는구나 했던 내 몸이 다시 쌩쌩한 기운을 되찾았다. 의사의 처방과 각종 약으로 증상을 잠재우고, 증상을 유발했던 큰 원인인 술을 끊고 식습관을 바로잡고 체중을 좀 뺐을 뿐인데 말이다. 다시 봄이 오는 것 같다.
우리는 자연과 인간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자연엔 사계절이 있고 사람은 그런 것 없이 점차 약해지다 죽는 것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사람도 내부에선 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순환하는 것 같다. 우리 몸이 느끼지 못하더라도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결국 겨울이 온다. 건강한 사람은 컨디션이 좋고 나쁜 것이 그것이고, 아픈 사람은 발병하고 치유되는 것이 그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더 편하다.
어른들은 계절에 맞게 몸을 보살펴야 한다고 늘 말했다. 겨울에 앞서 몸을 보해주고 삐걱대는 부분을 다독여줬어야 했다. 그러지 못했기에 맨살이 드러나 서리가 앉은 것이다. 몸은 양약으로 고쳤지만, 자연과 함께 호흡해온 전통의 지혜를 한번 곱씹어보게 되는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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