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세계를 강타한 친환경의 역설

입력 2021-11-28 17:22   수정 2021-11-29 00:31

영국 7위 에너지 공급업체 벌브가 지난 23일 파산했다.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해 전력 생산 비용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이후 영국에서 같은 이유로 파산한 업체는 21곳에 달한다. 170만 가구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벌브는 이들 업체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영국 정부는 공적 자금을 쏟아부어 벌브를 일시적으로 운영할 방침이다. 현재 영국에서 천연가스 가격은 연초 대비 네 배 이상 뛰었다. 전문가들은 영국의 천연가스 위기로 인한 비용이 26억달러(약 3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 비용은 결국 소비자에게 청구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세계 곳곳에서 에너지 대란
영국뿐만 아니라 최근 세계 곳곳에선 에너지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7배나 올랐다. 이 여파로 영국에선 가스·전력 소매업자들이 줄도산했고, 비료 등 에너지 소비가 많은 공장의 조업이 중단됐다. 프랑스에선 가정용 전기료가 급등해 정부가 수백만 가구에 100유로의 보조금을 주고 있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에서도 전기 공급이 끊기면서 공장이 멈춰서는 사태가 빚어졌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을 의식해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여파다. 중앙정부가 탄소배출 저감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지방정부들이 페널티를 피하려고 에너지 소비 규제를 강화한 데다 호주와의 갈등으로 발전용 석탄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전력난이 중국 전역을 강타했다.

이달 들어 미국에선 석탄 가격이 12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세계 각국의 신재생에너지 전환 정책 등으로 천연가스 가격이 뛰면서 석탄값도 연쇄적으로 올랐다. 이로 인해 올겨울 미국 가구당 월 난방비는 11달러가량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식료품과 주택, 자동차 가격이 오른 상황에서 난방비까지 뛰면 인플레이션 우려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한국 정부만 '탈원전' 고집
전 세계적인 에너지 대란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각국이 앞다퉈 친환경 정책을 펴면서 빚어진 ‘그린플레이션’(친환경 정책으로 인한 물가 상승)이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에너지난 해결과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원자력발전으로 눈을 돌리는 국가가 잇따르고 있다. 신재생에너지만으로는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중국은 원전 확대에 가장 적극적이다. 앞으로 15년 동안 3700억~4400억달러를 들여 최소 150기의 원전을 짓기로 했다. 프랑스도 탈원전 기조에서 벗어나 원전 확대로 방향을 틀었다. 원전 발전 비중을 2017년 75%에서 2035년 50%로 낮추겠다는 방침이었지만, 이를 뒤집고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에 2030년까지 10억유로를 투자하기로 했다.

영국도 2050년까지 소형 원전 16기를 건설할 계획이다. 미국은 지난 5월 원전 2기의 수명을 60년에서 80년으로 연장한 데 이어 2234메가와트(㎿) 규모의 신규 원전 2기를 짓고 있다. 빌 게이츠가 세운 원전기업 테라파워는 와이오밍주 케머러에 SMR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동일본대지진 이후 가동이 중단된 원전 재가동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세계 주요국과는 달리 한국 정부는 탈원전을 고집하고 있다. 원전 대신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크게 늘린다는 방침이다. 이대로 가면 국내에서도 언제든 에너지 대란이 벌어질 수 있다. 이제 대선까지 꼭 100일 남았다. 각 대선 후보는 어떤 정책이 국민과 국익을 위한 것인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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