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임원 직급 중 전무와 부사장을 부사장으로 통합한다. 연공서열을 타파하고 조직을 보다 수평적으로 만들기 위한 결정이다. 30대 임원과 40대 최고경영자(CEO)를 배출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는 이같은 내용이 담긴 인사제도 개편안을 29일 발표했다. 나이와 직급에 상관없이 능력있는 인재를 대우해준다는 게 새 인사제도의 골자다.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에 우선 적용되고, 타 계열사도 도입을 검토 중이다.
앞으로는 4단계로 꾸려졌던 커리어레벨(CL) 제도가 유명무실해진다. 과거에는 연한을 채워야 직급이 올라갔지만 앞으로는 능력이 있으면 바로 승진할 수 있게 된다. 기존 CL2(이전 사원·대리급), CL3(과·차장급)는 각각 10년 가까이 지나야 승격이 가능했다.
각 직원의 직급과 사번은 본인과 인사팀 외에는 알 수 없게 된다. 회사 인트라넷에 직급 및 사번 표기를 삭제하고, 매년 3월 진행하던 공식 승격자 발표도 폐지한다. 동료의 직급이나 입사연도를 알 수 없게 된다. 자연스럽게 호칭도 '님' 혹은 '프로님'으로 통일하고, 상호 존댓말을 쓰게 된다. CL 제도는 인사팀에서 인사평가를 할 때만 참고한다.
기존 인사제도에서 직원들의 가장 큰 불만이었던 상대평가도 완화된다. 최상위 고과를 제외한 나머지 고과는 모두 절대평가로 바꾼다. 팀 구성원에 따라 형평성이 어긋났던 기존 고과평가의 단점이 개선된다. 여기에 동료평가를 새로 도입해 부서장에 치중된 평가방식을 보완한다.
새 인사제도에서는 열심히 일한만큼 커리어 관리도 효과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다. 새로 도입되는 사내 FA(프리 어그리먼트) 제도가 대표적이다. 같은 부서에서 5년 이상 근무한 임직원은 타 직무나 부서로 전환할 수 있다. 이직이 활발한 IT업계처럼 삼성전자 내에서 부서 전환이 활성화될 것으로 회사 측은 기대하고 있다.
유연한 근무환경도 조성한다. 삼성전자는 주요 거점에 공유 오피스를 마련하고 사업장 내 카페와 도서관에도 자율근무존을 만들기로 했다. 꼭 회사에 들어와서 일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글로벌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방안도 새로 마련했다. 국내·해외법인의 젊은 우수인력을 선발해 일정기간 상호 교환근무를 실시하는 STEP(Samsung Talent Exchange Program) 제도다. 해외에 나가 역량을 쌓고 돌아오는 지역전문가 제도와 별도로 시행된다.
이번 인사제도 개편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뉴 삼성'을 구축하기 위한 첫 걸음이다. 뉴 삼성의 목표는 과거 성공에 자만하지 않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아 미래를 개척하는 기업이다. 기존 연공서열식 조직문화로는 불가능한 모습이다. 실리콘밸리식의 수평하고 유연한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사제도부터 혁신해야 한다는 게 삼성 측 설명이다.
이 부회장은 최근 미국 출장 중에도 구글, 아마존, MS(마이크로소프트) 등 기업 경영진과 연쇄 회동을 가졌다. 이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육성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개편 과정에 임직원이 참여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2015년 임직원 대토론회를 시작으로 수시로 임직원의 의견을 듣고 인사제도에 반영했다. 최근에도 임직원 설명회를 열어 인사제도 초안을 설명한 뒤 비판을 수렴해 일부 수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노사협의회, 노동조합, 각 조직의 조직문화 담당자 1000여명 등을 대상으로 미리 내용을 설명한 뒤 이들의 의견을 수렴했다"고 설명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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