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위드 코로나와 '회색 코뿔소'

입력 2021-11-29 17:14   수정 2021-11-30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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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기대를 모았던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 조치가 시행된 지 어느덧 한 달이 됐다. 백신 도입이 많이 늦었음에도 접종률을 경이로운 속도로 높인 국민의 인내와 협동에 대한 보상으로서 충분할 수는 없었지만, 오랜만에 느끼는 일상은 여전히 방역 상황보다 익숙한 것이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서인지 최근 국내외 전문가들이 발표하는 내년도 경제전망은 일단 긍정적 표현들이 우세하다.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상황이 악화해 안심하기 어렵지만, 이번 경제 위기의 원인인 코로나 확산이 백신·치료제 보급에 따라 내년부터는 더 이상 위험 요인이 아닐 것이라는 낙관적 기대가 핵심적 근거다.

글로벌 회복세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 등 선진국이 당분간 확장적 재정과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긍정적 전망의 이유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양적완화 축소를 곧 시행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선진국의 정책금리 인상은 내년 하반기 이후에나 시도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긍정적 경제 전망에도 불구하고 내년을 준비하는 기업과 가계의 마음은 여전히 불안하다. 먼저, 국내만 하더라도 코로나 확산세가 심상치 않아 당장 언제라도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화할 수 있다는 걱정이 크다. 위드 코로나를 환영하면서 새롭게 단장한 가게를 다시 닫아야 하는 위험에 처해 있는 수많은 자영업자의 속은 까맣게 타고 있다.

다음으로, 글로벌 공급 차질 문제가 장기화하면서 경기 회복세를 꺾을 것이라는 걱정이다. 최근 요소수 사태에서 우리는 어떤 이유든 우리 경제가 원자재나 중간재 수입에 문제가 발생하면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가리지 않고 충격을 받는 대외 의존형 경제 구조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더 큰 문제는 글로벌 공급 차질을 초래하는 문제들이 세계 각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고, 나아가 언제 해소될지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코로나 재확산으로 봉쇄됐던 동남아 등지의 생산 재개가 순조롭지 못하고, 선진국 주요 항만의 하역 서비스 차질도 여전하다. 이런 문제들의 배경에는 ‘노동력의 이동 제약’이 작용하고 있는데, 방역을 위한 국가·지역 간 이동의 제약과 더불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같은 보호주의적 정책의 효과도 중첩돼 있어 글로벌 공급 차질 해소에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세 번째는 글로벌 인플레이션 걱정이다. 일반적으로 경제가 위기에서 회복하는 시기에는 기저효과로 인해 전년 동기 대비로 발표되는 물가상승률이 높게 나타난다. 그래서 지난여름까지만 하더라도 인플레이션이 단기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은 더 빠르고 강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특히 최근에는 글로벌 공급 차질의 영향이 상승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런 비용 상승형 인플레이션은 기업 활동을 위축시켜 경기 회복에 악영향을 미치는데, 이 때문에 인플레이션에 대한 걱정이 많은 것이다.

이와 더불어 글로벌 공급 차질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아지면 인플레이션 압력도 그럴 위험이 높아진다. 과거 사례를 볼 때 단기간에 국제 유가가 서너 배씩 급등했던 1970년대 두 차례 오일쇼크를 제외하면 비용 상승형 인플레이션이 장기화한 상황을 찾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현재의 인플레이션은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던 장기 불확실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인플레이션이 장기화하는 경우 수요 견인형인지 비용 상승형인지의 구분보다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것이 우선적인 목표가 되면서 긴축적인 정책기조가 채택되고, 결국 경기 안정을 목표로 하는 정책이 오히려 경기 변동성을 키우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거론됐지만 간과하기 쉬운 위험을 ‘회색 코뿔소’라고 하는데, 경고를 무시하거나 아직 가시화하지 않은 위험을 간과해 준비된 전략 없이 경제정책을 운용할 경우, 통제 불능의 코뿔소를 끌어들이는 위험을 자초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걱정들도 경기 회복세의 구조적 취약성과 연계된 하방 위험으로서 많이 언급돼 온 위험이다. 성급하거나 잘못된 정책 기조의 선택으로 더 큰 회색 코뿔소를 불러들이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 글로벌 공급망과 인플레이션 구조 등에 대한 이해와 엄밀한 시나리오 분석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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