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모든 규제가 비효율적인 것은 아니다. 김영삼 정부의 금융실명제처럼 실패된 시장에 대한 규제는 효율성을 증가시킨다. 비효율적 규제의 대표적 예로 198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지 스티글러의 ‘포획이론’이 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피규제자가 없으면 규제 기관은 조직과 인력을 유지할 수 없고 피규제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규제 기관에 로비하므로, 결국 피규제자가 포획 주체로서 정부를 포획하게 된다. 최근 빅테크 기업이나 플랫폼 비즈니스에 대한 규제가 혁신보다 오히려 대관 강화를 유도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가까운 시기에 국내 기업들이 직면할 대표적 규제는 탄소중립이다. 이 같은 규제는 정부가 주도권을 가진 것도 아니고 시장 실패 때문도 아닌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규제다. 즉, 유럽과 미국발 탄소규제는 2∼3년 안에 국내 경제에 직격탄이 될 것이며,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와 유럽연합(EU)이 추진하고 있는 탄소국경세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문제는 대기업조차 가까운 시일 내에 기업의 가치창출 체계를 탄소중립 구조로 전환하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이미 철강업계는 정부의 ‘2050 탄소중립’ 추진 이후 비상경영에 들어간 상황이다. 현대제철의 경우 2020년도 탄소배출 관련 부채 증가가 영업이익의 약 58%에 달했다. 하물며 중소기업은 기업 존폐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보도에 따르면, 멸종을 앞둔 내연기관 자동차의 부품회사 중 최소 18%, 최대 47%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 이는 철강이나 자동차뿐만 아니라 에너지, 화학, 석유, 석탄, 운송에 관련된 국내 수많은 기업과 근로자들이 맞닥뜨릴 상황이다.
EU 국가들은 굴뚝산업이 성장할수록 탄소배출 비용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이미 경험했고, 이에 대응해 어떤 제도를 활용할지 고민하고 준비한 기간이 길다. 결국, 탄소 의존도가 높은 산업의 전환은 피할 수 없으며, 이로 인한 실직 등 사회적 문제를 ‘공정 전환(Just Transition)’으로 정의하고 지원체계를 마련했다. EU는 2019년 말 채택한 ‘그린딜(European Green Deal)’을 통해 향후 10년간 공정전환기금을 최소 1조유로 조성하고, 피해 지역·산업·근로자에게 1500억유로를 지원하기로 했다. 공정 전환에 대한 지원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석탄산업만 보더라도 지난 8월 상원에서 1조달러에 달하는 시설 법안이 통과됐고, 하원에서는 근로자 재교육, 토지 개간 및 재개발을 포함해 에너지 커뮤니티에 대한 저탄소 투자를 위해 10년 동안 20억달러의 자금을 지원하기로 문서화했다.
한국도 공정 전환을 그린뉴딜 계획의 중요한 요소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2050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정부의 내년 예산 11조9000억원 중 공정 전환 관련 예산은 5000억원 수준이다. 전체 604조원의 거대 예산에서 공정 전환이 보이지 않는다. 거대 자본을 가진 해외 국가들이 주도하는 탄소중립 규제에서 국내 기업, 특히 중소기업도 효율적이고 공정한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공정 전환에 대한 정책적 관심과 지원이 실기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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