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옥 동원F&B 대표는 동원그룹 사원에서 출발해 대표에 오른 첫 인물이다. 일하는 재미에 주말마다 출근하던 신입사원은 27년 뒤인 2016년 동원그룹 내 최대 계열사 동원F&B의 사장 자리에 올랐다. 대표를 맡은 지 5년 만에 동원F&B 매출은 1조4650억원에서 2조원(올해 개별기준 예상치)으로 약 40% 늘었다. 영업이익도 445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두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정체에 빠진 국내 식품 시장에서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이룬 성과다.
2000년대 초의 일이다. 김 대표는 전사적 자원관리(ERP) 시스템 도입 프로젝트를 맡게 됐다. 동원그룹 창사 이후 최대 규모 프로젝트였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의 기대도 컸다. 김 대표는 본격적으로 시스템을 적용하기 전 시연해보고 싶었다. 당시 ERP 도입과 관련, 협업 파트너사였던 외국계 업체는 “어떤 회사도 시연을 요구한 적이 없다”며 거절했다. 하지만 그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주말에 출근해 시연을 밀어붙였다. 예상대로 엉망이었다. 수차례 시연하며 문제를 해결한 끝에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도입하는 데 성공했다. 그의 치열함을 엿볼 수 있는 일화다.
그는 동원F&B 기획실장, 식품본부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며 다양한 분야에 능통한 국내 대표 식품 전문가이자 최고경영자(CEO)로 성장했다.
동원참치는 1982년 출시된 국내 최초 참치캔이자 ‘국민 식품’이었다. 하지만 김 대표는 혁신이 없으면 새로운 소비자를 확보하기 어려울 것으로 봤다. ‘참치=통조림 식품’이란 편견을 깨고 간편식 개념을 접목한 파우치 참치, 큐브 참치 등을 선보였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겨냥해 팝업스토어를 운영하고,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해 소셜미디어를 통해 알렸다.
국내 첫 한식 HMR 브랜드인 ‘양반’도 바꿔나갔다. 2019년 400억원 규모의 설비투자를 통해 양반 국·탕·찌개를 내놨다. 기존 양반김, 양반죽, 양반김치에 더해 한식 한상차림을 완성했다. 펫 푸드 사업도 강화했다. 해외에 원재료만 납품하던 기존 사업구조에서 벗어나 고양이뿐만 아니라 강아지까지 아우르는 자체브랜드 ‘뉴트리플랜’을 내놓고 국내외 시장 공략에 나섰다.
유통망을 확대하고 품질 관리 시스템도 강화하며 사업 기반을 탄탄하게 다져나갔다.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온라인 유통채널뿐만 아니라 할인점, 편의점 등 채널별 맞춤 상품을 개발해 수익구조를 개선했다. 식품기업에 품질은 ‘타협할 수 없는 최우선의 가치’라는 생각에 ‘품질 실명제’ ‘신제품 안전게이트’ 등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다.
K푸드 열풍을 타고 해외시장 공략에도 적극 나섰다. 상온 간편식 떡볶이 ‘떡볶이의신’은 올해 해외 판매액 200억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동원F&B의 캔햄 ‘리챔’은 일본 진출 6개월 만에 누적 판매액 36억원을 기록했다.
김 대표는 “퇴근 후 미니언즈 팝업스토어에 가봤더니 직원들이 바쁘게 뛰어다니며 소비자와 즐겁게 소통하고 있었다”며 “세상이 변해도 ‘지호락’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지호락(知好樂)은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로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며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는 의미다.
가장 하고 싶은 일을 묻자 김 대표는 “인재 확보”라고 답했다. “회사를 인재로 채워 미래에도 계속 성장하는 기반을 다지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인재 육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취임 후 임직원이 성장할 수 있는 직장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2019년엔 대표 직속 밀레니얼 보드를 마련했다. 이를 통해 MZ세대 직원들이 자유롭게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했다. 친환경 패키지 캠페인, HMR 무인판매 플랫폼, 해외 현지 마케팅 전략 등이 밀레니얼 보드를 통해 나왔다.
문득 떠오르는 기발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는 ‘상상뉴런’ 게시판, 선후배 동료 임직원과 업무지식에 대해 묻고 답할 수 있는 소통 채널 ‘랜선선배’ 등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ESG위원회 신설…플라스틱 퇴출 나서
김 대표는 지난 6월 대표이사 직속 ESG위원회를 신설하고 본격적으로 ESG 경영 강화에 나섰다. 위원회 산하에는 주제별로 전담 실무조직을 구성해 환경, 안전관리, 윤리경영 등 ESG 분야 전반의 전략과제를 발굴하고 성과를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김 대표는 ESG 경영을 본격화하면서 ‘플라스틱 줄이기’를 우선 과제로 삼았다. ESG 경영이 화두가 되기 전인 2013년 식품부문 부사장 시절부터 제품에 사용되는 플라스틱 포장재를 경량화하는 사업을 추진해왔다. 올해에는 페트병 몸체와 뚜껑에 플라스틱 비닐을 없앤 무라벨 친환경 생수 ‘동원샘물 라벨프리’를 비롯해 플라스틱 트레이를 없앤 ‘양반김 에코패키지’, ‘노 플라스틱’ 명절 선물세트 등 친환경 콘셉트의 제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였다.
소비자 사이에서 가장 반응이 좋은 사업은 아이스팩 대신 얼린 생수를 보랭제로 사용하는 ‘동원샘물 프레쉬’ 서비스다. 동원F&B는 지난해부터 온라인으로 주문받은 신선식품을 배송할 때 아이스팩 대신 500mL짜리 생수를 얼려 보랭제로 사용하고 있다. 미세 플라스틱의 일종인 고흡수성 폴리머(SAP)가 들어 있어 환경오염의 원인으로 꼽히는 기존 아이스팩은 퇴출시켰다. 아이스팩 대신 생수를 보랭제로 쓰면 회사로선 비용이 더 들어가지만 김 대표는 환경을 생각해 ‘생수 보랭제’ 사용을 고집하고 있다.
노 플라스틱 친환경 선물세트도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노 플라스틱 선물세트는 포장에 사용되는 플라스틱 트레이를 종이 재질로 교체하고, 기존 부직포 가방이 아니라 종이 가방에 담아 모든 포장을 완전히 재활용할 수 있도록 한 제품이다. 특히 리챔18호는 리챔의 플라스틱 뚜껑까지 제거해 플라스틱을 완전히 없앴다. 동원F&B가 선제적으로 시작한 노 플라스틱 선물세트는 식품업계 전반으로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
김 대표는 “ESG 경영의 핵심은 실천”이라며 “전사적으로 ESG 경영이 습관처럼 자리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 사회에 기여하는 착한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 김재옥 대표는
△1963년 출생
△1982~1989년 전남대 법과대학 공법학과 학사
△1989년 동원산업 입사
△2004년 동원F&B 마케팅실장
△2005년 동원F&B 기획실장
△2006년 동원F&B 경인사업부장&CF사업부 상무
△2006~2008년 헬싱키 경제대학원 MBA
△2013년 동원F&B 식품사업부문 부사장
△2015년 동원F&B 총괄 부사장
△2016년 동원F&B 대표(사장)
△2016년 한국식품산업협회 부회장
박종관/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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