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천 흉기난동 사건’ 등에서 부실대응 비판이 쏟아진 만큼 경찰과 정치권은 면책 규정 신설을 몰아붙이고 있다. 폭넓은 공권력 행사가 범죄 예방으로 이어질 것이란 이유에서다. 이에 반대하는 쪽에서는 면책 규정이 공권력 남용과 인권침해를 초래할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그동안 경찰은 직무수행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금전상 손해를 끼치면 이를 면제받을 길이 없었다. 그런 만큼 범죄 현장에서 대응할 때 직무유기, 직권남용 등으로 송사에 휘말리는 일이 적지 않았다.
경찰이 직무수행 중 소송을 당해 공무원 책임보험을 신청한 건수는 지난해만 107건에 달했다. “이런 현실 탓에 공권력 행사를 망설이게 된다”는 게 현장 경찰관들의 얘기다.
이번 면책 논의도 올해 초 ‘정인이 사건’이 불거진 뒤 본격화됐다. 아동학대 신고를 받고 출동하더라도 소송 우려 탓에 아이와 부모를 분리 조치하기 쉽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된 게 계기가 됐다. 최근에는 인천의 한 빌라에서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했을 때 경찰관이 권총과 테이저건을 갖고 있었는데도 피해를 막지 못하면서 면책 규정 논의에 불이 붙었다.
상당수 전문가는 면책 규정 신설이 이런 한계를 줄일 것으로 보고 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면책 규정으로 경찰관들이 더 적극적으로 범죄 현장에 대응할 것이고, 이런 문화가 정착되면 범죄자가 범행을 저지를 유인도 낮아질 것”이라고 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현장 대응 매뉴얼을 지키더라도 형사 고발 등 송사에 휘말리는 일이 많아 범죄를 적극적으로 막을 의지가 작다는 게 경찰 조직의 문제”라며 “공권력 사용이 빈번해지면 인권 침해 논란도 커지겠지만, 이를 의식해 피해자의 신체를 보호하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위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긴급하게 초동 조치를 하는 것이 사법경찰관의 역할인데, 한국만큼 공권력 사용을 주저하는 나라가 없다”며 “면책 규정을 통해 경찰의 공권력 행사가 폭넓게 보장돼야 한다”고 했다.
범죄 예방을 위한 경찰 업무는 어디까지나 법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찰관이 직무 과정에서 물리력을 적법하게 행사했으면 현행법으로도 보호받을 수 있는데, 소송에 휘말리는 것은 공권력 집행이 적법하지 않았다는 의미”라며 “법 조항 신설보다 경찰관의 현장 판단 능력을 기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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