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홍민의 직업의 세계] 이정준 퓨처플레이 투자심사역

입력 2021-11-30 17:50   수정 2021-11-30 17:54

[한경잡앤조이 강홍민 기자]

최근 창업 열기가 대한민국을 넘어 전세계로 퍼지고 있다. 일상 생활에서의 불편함을 편리한 서비스로 사업화하는 스타트업이 늘어나면서 우리 생활의 변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갈수록 뜨거워지는 창업 열기 속에 스타트업의 성장 가능성을 잣대로 옥석을 가리는 투자심사역의 몸값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벤처 캐피털(VC) 업계에서는 연봉 5억원 이상 투자심사역이 1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연봉 10억대 투자심사역도 등장하고 있다. 바이오 등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신산업 분야의 투자심사역은 기본급의 10배가 넘는 성과급을 받는다 .두 번의 창업 경험을 무기로 투자심사역이라는 새로운 직업에 도전한 이정준(29) 퓨처플레이 투자심사역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투자심사역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보통 투자심사역은 투자 심사만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심사역이 하는 일은 크게 딜 소싱, 투자 집행, 사후 지원 3가지로 구분된다. 특히 우리 회사는 다양한 프로젝트도 함께 진행한다. 예를 들어 채용 행사를 기획·진행하거나 예비 창업자들을 교육해 창업까지 이어지게 하는 프로젝트도 심사역이 맡고 있다. 좋은 팀을 찾고, 투자하고, 그 팀이 잘 될 수 있게 필요한 모든 일을 하는 것이 심사역의 역할이다.”

-심사역이 되기 위한 조건이 있다면 무엇인가.

“아직 심사역의 조건을 말씀드릴 만큼 충분한 내공이 쌓이지 않았지만 어떤 역량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진 않는다. 심사역을 하기 전에 창업을 해 본 경험을 토대로 얘기한다면 스타트업에서 주도적으로 성과를 만들어 본 경험이나 스타트업을 깊게 들여다볼 수 있는 관찰력이 필요할 것 같다.”
온라인 다이어트 서비스, 화장품 브랜드 론칭 등 두 차례 창업 경험
"창업자가 겪는 리스크가 나와 안 맞다고 판단···
가장 잘 할 수 있는 투자심사역에 도전"
-창업자에서 투자심사역으로 진로를 변경했다. 창업을 그만 둔 계기가 있나.

“대학 때 두 번 창업을 했었다. 첫 번째는 온라인 다이어트 서비스였고, 두 번째는 화장품 브랜드를 론칭했다. 직접 제조하고 유통, 브랜딩까지 했었다. 화장품 브랜드 사업을 할 때 제품에 문제가 생겨 전 소비자를 상대로 환불을 했는데, 한 순간에 회사 빚이 억 단위로 생기더라. 갑자기 큰 빚이 생기니 무서웠다. 창업을 하면 언제나 리스크는 생기기 마련이지만 문득 그 리스크가 무섭게 느껴지면서 내가 창업과 맞지 않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투자심사역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계기는 무엇인가.

“취업을 준비하면서 내 이력서가 가장 빛을 볼 수 있는 곳을 생각해 보니 VC였다. 어릴 적부터 본받을 점이 있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소수의 사람들과 깊은 유대 관계를 가지며 돕는 일을 즐겨했다. 이런 성격과도 잘 맞는 일이 투자심사역이라 생각했다.”

-투자심사역으로서 시간이 많이 지나진 않았지만 창업할 때와 현재를 비교해 보면 어떤가.

“비교적 안정감이 든다. 급여부터 여러 가지 면에서 좋아졌다. 창업할 땐 늘 회사가 언제 없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걱정은 없다.”

-서울대 조선해양학과를 졸업했다. 창업과는 거리가 먼 전공이다.

“맞다. 보통 현대중공업이나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업계로 많이 취업한다. 취업을 준비하던 시기엔 조선업 경기가 좋지 않아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으로 취업한 동기들도 많다. 창업을 한 사람은 아직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원래 창업에 관심이 있었나.

“대학 2학년 때 졸업 선배와의 만남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당시엔 서울대에 들어왔으니 돈 많이 버는 직업을 가질 수 있겠다 싶었다. 조선업계에 취업한 선배에게 연봉을 물어봤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적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선업 경기가 워낙 안 좋을 때여서 그랬던 것 같다. 우연하게도 그 무렵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을 읽고 있었는데, 돈을 버는 수단이 꼭 노동이 아니라 창업이나 투자를 해서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교내 창업동아리(SNUSV)에 가입했다.”

-창업동아리에서는 어떤 활동을 했나.

“일주일에 한 번 정기 모임을 가지면서 선후배 간 네트워킹 행사, 창업경진대회를 했다. 무엇보다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멋진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점이 동아리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창업 외 일반 기업에서 일한 경력도 있다. 어떤 회사에서 근무했나.

“캐시워크 앱을 출시한 스타트업에서 어학 교육 사업을 담당했었다. 여러 가지로 미숙할 때라 성과를 만들진 못했지만 회사 경영진들을 보면서 배웠던 것들이 지금까지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조언이 있는데, 당시 회사 대표께서 ‘부자가 되고 싶으면 부자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보고 따라하라’고 말씀하신 게 기억이 난다.”
"9개월 간 15개사 50억원 투자금 다뤄···
퓨처플레이는 기술기업 초기 투자가 메인"
-투자심사역으로 관여한 투자 포트폴리오에 대해 소개해 달라.

“온더룩, 메디인테크, 딥아이, 타운즈 등 9개월 간 15개사의 투자심사 보고서를 적성하는 등 관여를 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물 기반 아연 금속 전지를 개발하는 코스모스랩이다. 이주혁 대표가 카이스트 박사 과정 시절 창업한 회사인데, 그가 쓴 논문이 국제 학술지 표지 논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간 검토한 팀 중에 가장 신뢰감을 받은 창업자로 기억에 남는다.”

-투자할 기업은 어떻게 선정하나.

“보통 이니셜(initial) 미팅, 프리(pre) IR 미팅, IR 미팅으로 나눠진다. 먼저 각 심사역이 1대1로 팀을 만나보고 괜찮다 싶으면 프리 IR, IR 미팅으로 이어진다. 아직 경험이 많지 않아 선배 심사역들이 배정해 준 회사들을 중심으로 검토하고 있다.”

-투자 검토 시 가장 중요하게 보는 부분은 무엇인가.

“흔한 이야기지만 80% 이상이 사람으로 결정된다. 특히 우리 회사는 기술 기업에 대한 초기 투자를 주로 하다 보니 대표와 팀 외에 검증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다. 물론 기술의 혁신성과 시장의 성장 가능성 같은 부분도 중요하지만 가장 변하기 어렵고 중요한 부분은 사람이다. 쉽게 말하면 스타트업의 대표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고, 그 분야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본다.”
"투자심사역은 창업자가 힘들 때 도와주는 진짜 친구…
진정성 갖고 다가가면 좋은 결과 나와"
-두 번의 창업 경험이 투자심사역으로 일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물론 도움이 될 때가 많다. 대다수의 스타트업 대표는 고민이 많다. 직원들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할 고민들이 있다. 그건 경험해 본 사람만 알기 때문에 먼저 대표들에게 연락해 고민을 듣는 역할을 많이 한다. 심사역이라는 직업의 본질은 창업자의 부름에 가장 먼저 응답하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어려울 때 찾는 친구가 진짜 친구이듯 창업자의 진짜 친구가 심사역이 아닐까.(웃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VC가 투자할 스타트업을 선정했다면 최근에는 반대 경우가 많다. 스타트업이 VC를 고르는 것이다. 투자 판도가 바뀐 것을 느끼나.

“맞는 말이다. 몇 년 새 투자자가 많아졌고, 스타트업이 돈을 조달할 수 있는 방법도 다양해졌다. 그래서 많은 VC들이 왜 우리를 선택해야 하는지를 설득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좋은 창업팀에 투자를 받게끔 설득하는 것이 투자를 검토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 같기도 하다.”

-기업을 설득하는 노하우는 어떻게 터득하나.

“선배 심사역들이 하는 방법을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긴 하지만 개인적으론 소개팅에서 이성을 사로잡는 방법이 사람마다 다른 것처럼 사람마다 상대방을 설득하는 방법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만의 방법을 만드는 중이다.”

-그렇다면 이정준 심사역은 어떤 스타일로 어필하나.

“진정성이다. 결국 이 모든 일이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의사결정은 과학적이지만은 않다. 진정성 있는 모습으로 내 의지를 어필하면 좋은 결과가 생긴다고 믿는다.”

-투자를 잘 받기 위한 팁이 있다면 무엇인가.

“상대방에게 전문성이 갖춰져 있다는 점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심사역이 검토 단계에서 질문했을 때 잘못된 답변이나 전문성이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는다면 투자가 이뤄지기 어렵다. 두 번째는 솔직함이다. 계속 강조하지만 투자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 솔직함이 신뢰와 매력으로 전달되지 않을까.”

-투자한 기업에서 인수·합병(M&A)이나 IPO(기업 공개) 등 성과가 나오면 별도의 혜택이 주어지나.

“물론이다. 성과가 잘 나오면 연봉이 올라가고, 인센티브도 주어진다. 자연스레 승진도 하지 않을까.”

-근무 방식은 어떤가.

“코로나19 이후엔 재택근무와 출근을 병행하고 있다. 요즘은 주로 투자심사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업무 기한만 맞춘다면 디테일한 스케줄은 자율 조정이 가능하다. 외부 미팅이 많아 일정을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편이다.”

-연봉과 사내 복지제도는.

“일반적이진 않지만 30대 초반에 대기업에서 받을 수 있는 연봉과 비슷하다. 좋은 복지제도가 많지만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건 투자한 좋은 팀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일을 하면서 만난 분들 중에 개인적으로 닮고 싶은 창업자나 팀들이 많다.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이 최고의 복지인 것 같다.”

-투자심사역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팁을 준다면.

“스타트업 업계가 성장하면서 자연스레 심사역이란 직업도 인기가 많아졌는데, 여느 직업이 그렇듯 가장 중요한 건 차별화다. 본인이 다른 구직자에 비해 어떤 점을 어필할 수 있는지 뾰족하게 만들고 그 점을 선호하는 투자사를 찾는 게 포인트가 아닐까. 그리고 투자심사역을 업으로 삼기 전 인턴을 통해 스스로가 VC와 잘 맞는지를 확인하는 것을 추천한다. 린 스타트업이란 것이 있다. 시장에서 통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찾기 위해 저비용으로 다양한 실험을 해 보는 것이다. 직업을 찾는 것도 그와 비슷하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열정을 느끼는 일을 찾기까지 안주하지 말고 탐색하라고 조언했다. 탐색 과정에서 인턴 제도 등을 활용하면 정답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한경잡앤조이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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