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뜻 들으면 북한 대외선전매체 기사 같지만 대한민국 국립외교원장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미국을 방문 중인 홍현익 국립외교원장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워싱턴DC 우드로윌슨센터에서 열린 ‘미·북 관계 전망’ 세미나에서 “북한 입장에서 미국은 믿을 수 없는 나라”라며 이같이 말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고르바초프로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가 스탈린으로 만들고 있는 게 아니냐”고도 했다. 집권 10년간 네 차례의 핵실험, 두 차례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초고강도 무력도발은 물론, 고모부와 형까지 살해한 김정은이 마치 ‘미국의 방해’가 없었다면 고르바초프처럼 개혁·개방을 이끌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로 들린다.
홍 원장은 “우리도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등을 개발한다”며 “문제 삼을 필요 없다”고도 했다. SLBM은 심해에서 레이더 추적망을 피해 발사할 수 있어 ‘기습 핵공격’을 위한 무기로 꼽힌다. 한국은 지난 9월 세계 일곱 번째로 SLBM 시험발사에 성공했지만 핵을 보유하고 있진 않다. 반면 지난 10월 SLBM을 발사한 북한은 최대 116개의 핵무기를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 북한의 SLBM과 핵 미보유국인 한국의 SLBM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건 ‘붕어빵과 붕어가 같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북한을 두둔하는 그의 주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8월엔 “한·미 연합군사훈련은 안 해도 된다”고 했고, 지난 10월 국회에선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를 너무 문제시하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홍 원장은 이날도 “연합훈련 2부는 북한을 점령하는 내용”이라며 “2부는 생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낙관적 대북관으로 무장된 이 같은 주장은 모두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홍 원장은 “만약 종전선언이 안 되고 이 상태가 지속되면 내년에 위기가 올 것”이라며 “4~10월이 굉장히 위험한 시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동석한 김기정 국가전략안보연구원장은 종전선언이 되면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 유엔군사령부 해체를 주장할 것이라는 미국 전문가들의 우려에 “냉전 시기에 나온 유산”이라고 반박했다.
이들 연구원장은 선출직도 아니고 국회로부터의 인사청문회도 거치지 않는다. 하지만 국책연구원 수장이란 이유로 그들의 말 한마디는 큰 무게감을 갖는다. 과연 이들이 그 무게감을 아는지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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