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96년 만에 문닫은 '서울역 그릴'

입력 2021-12-01 17:14   수정 2021-12-02 00:18

경양식이라면 ‘스프’부터 생각난다. 버터와 밀가루를 볶아 만든 크림 수프를 당시엔 ‘스프’라고 불렀다. 돈가스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접시를 핥듯 긁어먹던 추억의 ‘스프’ 맛! 양식 샐러드에 깍두기가 곁들여 나온 건 한국 경양식만의 조합이었다. 접시에 펴서 담은 쌀밥과 그 위에 뿌린 까만 깨도 그랬다.

우리나라 최초의 경양식집으로 불리는 ‘서울역 그릴’은 1925년 10월 15일 경성역 2층에서 개업했다. 당시 요리사만 40명이었고, 한꺼번에 200명이 식사할 만큼 규모가 컸다. 음식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지하 주방에서 2층으로 요리를 올려보냈으니 시설도 첨단이었다. 당시 정찬 가격은 3원20전. 설렁탕값(15전)의 20배가 넘었다.

이곳에서 국내 최초의 동계올림픽 출전 선수단 환송회와 조선축구협회 신임이사회 등이 열렸다. 나이 지긋한 웨이터가 나비넥타이 차림으로 주문을 받으며 “빵으로 하시겠습니까, 밥으로 하시겠습니까?”라고 묻는 장면은 그때도 비슷했다. 빵을 고르면 모닝빵과 딸기잼이 주로 나왔다.

이곳은 1층 대합실 옆에 있던 ‘티룸’(커피숍)과 함께 개화기 모던보이들의 아지트였다. 소설가 이상과 박태준도 자주 찾았다. 이상의 소설 ‘날개’에서는 돈이 없어도 꼭 머물고 싶은 꿈의 공간으로 나온다. 티룸에 앉은 주인공이 ‘메뉴에 적힌 몇 가지 안 되는 음식 이름을 치읽고 내리읽고 여러 번 읽었다. 그것들은 아물아물하는 것이 어딘가 내 어렸을 때 동무들 이름과 비슷한 데가 있었다’고 표현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광복 후에는 철도청이 운영을 맡아 대도시 주요 역에 분점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경영권이 민간으로 넘어가는 등 우여곡절 끝에 새로 지은 서울역 건물 4층으로 옮겨 영업을 계속하다 그제 문을 닫고 말았다. 일제강점기에 개업해 6·25 전쟁과 외환위기 등 숱한 고비를 넘겼지만 2년에 걸친 코로나 사태에는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마지막 영업을 알리는 안내와 함께 ‘폐업 준비로 돈가스와 생선가스, 오므라이스, 해물볶음밥만 가능’이라고 써 붙인 문구가 쓸쓸하고 애잔하다. 한때 청춘 남녀의 소개팅과 맞선 명소였고, 입학·졸업 등 축하와 기념일 잔치 자리였던 경양식집이 사라지자 “100년을 못 채워 아쉽다” “역사의 한 페이지가 이렇게 넘어가는구나” 등의 시민 반응이 종일 이어졌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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