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3일 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한 내년도 예산은 올해보다 49조원(8.9%) 늘어난 607조7000억원에 달한다. 최근 10년간 연평균 예산 증가율(6.0%)을 훌쩍 웃도는 ‘초슈퍼 예산’이다. 국회 심사 과정에서 당초 정부안보다 3조3000억원 늘었다. 통상 국회 심사 과정에서 정부안이 감액되는 경우가 많은 것을 고려했을 때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증액된 것은 이례적이다. 대선을 앞두고 ‘선심성 돈풀기’에 나선 결과라는 분석이다. 더불어민주당은 2020년 예산안에 이어 다시 한 번 단독 처리를 추진하면서 ‘독주’ 비판을 벗어나기 어렵게 됐다.
국회는 3일 본회의를 열고 3조3000억원 늘어난 607조7000억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하기로 했다. 감액된 예산은 5조6000억원인 데 비해 증액 예산은 9조원 수준이다.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는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시급하게 요구되는 민생예산을 증액했다”며 “최대한 여야 합의를 위해 노력했지만 경항모 사업에 대한 이견으로 여야가 수정안을 공동으로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3조3000억원 안팎의 순증엔 합의했지만 소상공인 지원 방식과 경항모 사업 등을 두고 끝내 여당과 의견을 좁히지 못했다. 이에 민주당은 “처리 시한(2일) 내에 반드시 마무리 지어야 한다”며 협상 결렬을 선언하고 예산안을 강행 처리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실무작업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지자 3일 오전 9시에 본회의를 열어 예산안을 통과시키는 것으로 일정을 바꿨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가 강력하게 요구한 지역화폐 예산도 크게 늘어났다. 당초 정부는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규모를 6조원으로 책정하고 2400억원의 예산(지원 비율 4%)을 포함했지만, 국회 심사 과정에서 발행 규모가 30조원으로 늘었다. 문화체육시설 대상 92만 개 바우처 지급 사업도 포함됐다.
방역 의료지원 예산도 1조3000억원 늘린 7조원이 반영됐다. 이 밖에 △경구용 치료제 등 40만 회분 구입 △병상 확충을 위한 중증 환자 병상 1만4000개 추가 △감염병전문병원 설립 △광주·울산 의료인력 지원 △전국 178개소 공공 야간약국 설치와 운영 예산 등도 포함됐다.
대선을 앞두고 국회가 선심성 정책에 몰두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당초 최소 12조원을 삭감하겠다며 ‘송곳 심사’를 예고했지만 막상 심사 과정에선 정부안보다 3조원 넘게 순증하는 데 합의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야당 간사인 이만희 의원은 의원총회에서 “우리 당이 주도해 어린이집 보육료 단가를 올리는 등 3200억~3300억원 정도의 증액을 이끌어냈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은 소상공인 손실보상 단가 하한선도 민주당 안(50만원)보다 더 많은 100만원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야가 끝까지 이견을 보인 경항모 사업은 국회 국방위원회가 예비심사 과정에서 정부안에 책정된 설계 예산(72억원)을 크게 삭감하고 간접비용으로 5억원만 남겨놨던 사업이다. 국민의힘은 현 정권의 ‘예산 알박기’라고 예산 반영에 반대했지만 민주당이 이날 예산안을 강행 처리하면서 경항모 예산이 정부안 그대로 포함됐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부가 곧 끝나는데 이 사업은 총 규모가 10조원이 넘는 사업”이라며 “이 엄청난 사업을 마무리하는 정권이 못 박고 나간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반발했다.
고은이/성상훈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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