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g version="1.1" xmlns="http://www.w3.org/2000/svg" xmlns:xlink="http://www.w3.org/1999/xlink" x="0" y="0" viewBox="0 0 27.4 20" class="svg-quote" xml:space="preserve" style="fill:#666; display:block; width:28px; height:20px; margin-bottom:10px"><path class="st0" d="M0,12.9C0,0.2,12.4,0,12.4,0C6.7,3.2,7.8,6.2,7.5,8.5c2.8,0.4,5,2.9,5,5.9c0,3.6-2.9,5.7-5.9,5.7 C3.2,20,0,17.4,0,12.9z M14.8,12.9C14.8,0.2,27.2,0,27.2,0c-5.7,3.2-4.6,6.2-4.8,8.5c2.8,0.4,5,2.9,5,5.9c0,3.6-2.9,5.7-5.9,5.7 C18,20,14.8,17.4,14.8,12.9z"></path></svg>구겨진 하늘은 묵은 얘기책을 편 듯
돌담 울이 고성같이 둘러싼 산기슭
박쥐 나래 밑에 황혼이 묻혀 오면
초가 집집마다 호롱불이 켜지고
고향을 그린 묵화(墨) 한 폭 좀이 쳐.
띄엄 띄엄 보이는 그림 조각은
앞밭에 보리밭에 말매나물 캐러 간
가시내는 가시내와 종달새 소리에 반해
빈 바구니 차고 오긴 너무도 부끄러워
술레짠 두 뺨 위에 모매꽃이 피었고.
그넷줄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더니
앞내강에 씨레나무 밀려 나리면
젊은이는 젊은이와 뗏목을 타고
돈 벌러 항구로 흘러간 몇 달에
서릿발 잎 져도 못 오면 바람이 분다.
피로 가꾼 이삭이 참새로 날아가고
곰처럼 어린 놈이 북극을 꿈꾸는데
늙은이는 늙은이와 싸우는 입김도
벽에 서려 성에 끼는 한겨울 밤은
동리(洞里)의 밀고자인 강물조차 얼붙는다.
- 이육사, 초가 -
보리밭에 말매나물 캐러 간 … 종달새 소리… 비가 오면 … 서릿발 잎 져도 … 이삭이 참새로 날아가고 … 성에 끼는 한겨울 … 강물조차 얼붙는다.
계절의 흐름에 따라 내용을 전개하는 경우가 많다. 세상이 시간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기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세상 일을 기술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문제는 문학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주로 계절과 관련한 사물을 소재로 삼아 계절감을 느끼게 하는 방법을 흔히 쓴다.이 작품에서도 이와 같은 방법을 사용했다. 봄과 관련한 소재로 제시된 것은 ‘보리밭’, ‘(밀매)나물 캐’는 것, ‘종달새’ 등이다. 가을에 씨를 뿌리면 보리는 이듬해 봄에 파릇해지고, 초여름에 거둔다. 종달새는 텃새이므로 특정 계절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번식기인 4월께 가장 왕성하게 울며 돌아다니기에 흔히 봄을 대표하는 새로 인정받고 있다. ‘비’는 봄과 여름을 느끼게 하는 소재이다. 특히 장맛비는 여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서릿발’은 가을을 느끼게 한다. 거기에 ‘이삭이 참새로 날아가’는 장면은 추수 때의 풍경이니, 가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성에 끼’는 것과 ‘강물조차 얼붙’는 것은 ‘한겨울’의 풍경이다.
이렇게 계절감을 느끼며 읽어야 하는 시가 있음을 유념하자.
묵은 얘기책… 고향을 그린 묵화(墨) 한 폭 좀이 쳐.… 띄엄띄엄 보이는 그림 조각
‘(얘기)책’, ‘그림’ 등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다. 그것들을 본다는 것은 어떤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책’의 내용은 ‘묵은’이라는 수식어로 보아, 오래된 과거에 있었던 일로 짐작된다. 그리고 ‘묵화’의 내용은 ‘고향’에 관한 것인데, ‘좀이 쳐’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랜 과거의 고향으로 짐작된다. (‘좀’은 원래 곤충의 한 종류인데, 사물을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해치는 사람이나 물건을 비유적으로 이를 때 쓴다.) 얼마나 낡았으면 그림이 ‘띄엄띄엄 보이는’ 조각으로 되어 있을까? 이들을 종합하면 시적 화자가 ‘얘기책’ ‘묵화’를 본다는 것은 곧 과거의 고향을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그 행위들은 향수(鄕愁)를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이렇게 시에서 어떤 대상을 떠오르게 하는 계기가 되는 사물 또는 그것을 접하는 행위가 있음을 알고 있으면 시 감상에 도움이 된다.
젊은이는 … 돈 벌러 항구로 흘러간 몇 달에/… 못 오면 … 피로 가꾼 이삭이 참새로 날아가고 … 성에 끼는 한겨울 밤은/동리(洞里)의 밀고자인 강물조차 얼붙는다.
시적 상황과 시어가 주는 분위기를 떠올리며 시를 감상하는 훈련을 많이 해야 한다. 예컨대 이 시에서 ‘젊은이’가 ‘돈 벌러 항구로 흘러간 몇 달’ 동안 ‘못 오’는 상황과 ‘피로 가꾼 이삭이 참새로 날아가’는 상황이 그려져 있다. 암울한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상황이다. 또한 ‘성에’ ‘한겨울 밤’ ‘밀고자’ ‘얼붙는다’ 등은 추위와 공포를 느끼게 하는 시어들이다. 이런 상황 묘사와 시어 구사를 따라가다 보면 이 시의 전체 분위기가 암울하고 비극적으로 느껴진다. 수능 국어에서 그것들이 무엇을 구체적으로 의미하는지 알려고 할 필요가 없을 때가 있다. 만약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를 측정하기 위한 문제라면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힌트를 <보기>로 주고 출제한다. 결국 의미를 파악하는 것보다 분위기를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포인트
계절감을 느끼며 읽어야 하는 시가 있음을 유념하자.<hr >‘보리밭’,‘종달새’ 등은 봄, ‘(장맛)비’는 여름, ‘서릿발’, ‘이삭’ 등은 가을, ‘성에’,‘얼음’ 등은 겨울의 계절감을 느끼게 하는 소재임을 알아 두자.
<hr >어떤 대상을 떠오르게 하는 계기가 되는 사물 또는 그것을 접하는 행위가 있음을 알아 두자.
<hr >의미를 파악하는 것보다 분위기를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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