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접종 안 하면 공부도 하지 말라는 건가요?”(경기 안양 A초등학교 학부모 안모씨)
정부가 내년 2월부터 12세 이상 청소년에게도 방역패스를 적용하겠다고 발표하자 학생과 학부모들이 “사실상 강제 접종”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학원, 독서실, 식당, 카페, PC방 등이 방역패스 의무시설로 새로 지정되면서 학생들은 이런 곳을 이용하려면 백신을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백신 접종을 강제하기보다 방역을 더욱 철저히 지키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3일 “코로나19가 청소년에게 확산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2월 1일부터 12~18세에도 방역패스를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청소년에게도 방역패스를 적용하기로 전격 결정한 것은 최근 학생 간 감염이 무서운 속도로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1일까지 7일간 전국에서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유·초·중·고 학생은 하루평균 484.9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학생 확진자 수는 지난달 중순까지 300명대를 유지하다 22일 교육부가 전국 유·초·중·고교의 전면 등교를 시작한 뒤 급증했다.
확진자의 99%가 백신 미접종자인 실정이다. 청소년이 외부에서 코로나19에 감염돼 가족들에게 전파하는 고리를 끊지 않으면 코로나 확산을 저지하기 어렵다는 게 정부의 생각이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1일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최근 코로나19 확진자가 크게 늘고 새 변이 바이러스까지 등장하면서 어렵게 시작한 전면등교가 또다시 기로에 섰다. 학생과 학부모들께서 백신 접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달라”고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백신 접종률은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18세 이상 성인의 접종완료율은 2일 기준 91.6%에 달했지만 12~17세 청소년은 27.9%에 그쳤다. 유 부총리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청소년 접종률이 좀처럼 올라가지 않자 방역당국이 결국 방역패스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항체가 형성되는 기간을 감안해 두 달의 적용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이에 따라 내년 2월부터는 백신 접종 완료일로부터 14일이 지났다는 증명서가 없으면 학원이나 독서실에 갈 때 이틀마다 유전자증폭(PCR) 검사를 받아야 한다. 불편함이 따르는 만큼 백신 접종을 서두르는 학생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백신패스가 도입될 경우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학원들의 원성도 빗발치고 있다. 경기 수원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신모씨는 “코로나19로 절반 이상 빠진 수강생을 이제 겨우 이전 수준으로 충원했는데 또 날벼락이 떨어졌다”며 “공황장애가 올 것 같다”고 호소했다. 이유원 한국학원총연합회 회장은 “학원 방역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만큼 방역패스만은 피해달라고 제안했는데 결국 대상에 들어가게 돼 허탈하다”며 “백신을 맞지 않은 아이들은 학원을 다닐 수 없으니 당장 학원 경영에 큰 피해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교육부와 질병관리청은 청소년의 백신 접종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소아·청소년 백신 접종 기한을 내년 1월 22일까지 연장했다. 사전예약 없이도 병원에 백신만 있으면 당일 바로 접종받을 수 있도록 했다. 13~24일 2주간은 ‘집중 접종 지원’ 주간으로 설정해 희망 학교를 대상으로 방문 접종을 시행하기로 했다. 겨울방학 이전에 최대한 백신을 많이 맞히려는 목적이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청소년은 교차 면역 반응으로 코로나19에 감염돼도 무증상이거나 경증에 그칠 때가 많다”며 “백신 접종을 유도하기보다 방역을 지킬 수 있도록 이끄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최만수/김남영/장강호 기자 beb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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