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군은 전주이씨 왕실 종친 회계를 담당할 정도로 일찍이 영민한 사람으로 소문났는데 파락호에게 누가 돈 관리를 맡길까? 그리고 쇄국주의자? 흥선대원군은 사실 문호를 열려고 했다. 다만 워낙에 엉망이 돼버린 조선의 내부 사정을 생각한 나머지 속도 조절을 하려고 했을 뿐이다. 일단 안에서 개혁을 통해 국력을 추스르고 회복한 이후에 외국의 것을 수입하고 배우려 했는데, 개화파들이 갑신정변을 일으키고 14개조 개혁안을 내걸었을 때 대원군 송환을 가장 맨 위에 올려놓은 것도 이유가 있다. 소위 코드가 맞았기 때문인데 개화파의 우두머리 김옥균을 가장 예뻐했던 사람도 대원군이었다. 대원군과 개화파의 관계만 봐도 ‘쇄국의 아이콘 흥선대원군’이라는 인식은 어찌 보면 대원군에게 억울한 일일 것인데 쇄국주의는 사실 조선왕조 내내 관철한 국시였을 뿐이다. 문 열어놓고 잘살고 있는데 갑자기 대원군이 등장해서 문을 걸어 잠근 것이 아니다. 상업이 흥하고 부의 흐름과 회전이 빨라지면 양 기득권이 위협받기 쉽기에 대부분 지주였던 사대부들이 기득권 방어를 위해 외부 세계와의 교류를 엄금한 것이다. 대원군이 등장해서 갑자기 열려 있던 문을 닫은 게 아니란 말이다.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모두 활발하게 외부 세계에 문을 열어놓고 상업적 교류를 했다. 특히 고구려는 한사군 유민과 이민자들도 적극 수용했는데 조선이라는 나라는 우리 역사에서 예외적 존재로서 유일하게 폐쇄 국가를 지향했고 5백 년 내내 닫힌 세계에서 살았다. 그런데 사실 현대사를 잘 살펴보면 조선시대만이 쇄국시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쇄국시대가 있었다.
내전이자 국제전이던 한국전쟁이 끝나고 88올림픽 이후 해외여행과 유학이 자율화되기 전까지가 우리 역사에서 두 번째 쇄국시대다. 35년 정도 기업인, 엘리트 관료가 아닌 이상 외국 것을 접하고 배울 수 없었는데 그 쇄국시대가 낳은 꼴통들이 바로 ‘386’들이다. 한참 배우고 성장할 시기에 유학 경험도, 여행도, 인터넷을 통한 외부 세계에 대한 경험도 없었다. 데모하고 노동 현장에 침투하느라 제대로 배우고 익힌 외국어도 없었다. 우리 역사 두 번째 쇄국시대가 낳은 괴물이 바로 그들인데 그래서 그럴까? 겉으로는 진보니 좌파니 하지만 실상을 보면 편협하기 짝이 없고 조선시대 말 위정척사파와 아주 흡사하다. 정사 관념에 기초한 극단적 이분법에 투철하다. 기업은 악이다, 외세는 악이다, 강자는 악이다, 일본은 악이다. 하지만 북한과 중국은 선이고, 약자 역시 선이며 노조는 절대선이다. 독재와 반독재, 민주와 반민주 이런 도식만이 아니라 다른 사회문제와 사안 역시 이분법적 선악 인식을 바탕으로 하는데 대안을 만드는 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입체적 분석의 힘이란 게 있을 수 없다. 내 입장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에서 사안을 보는, 국제관계에서 반드시 필요한 대칭적 사고 역시 안 되고, 현실 문제 해결이 아닌 역사 전쟁을 통해 자신들의 지배권력을 정당화하는 것에 골몰하기만 하는 데 귀환한 위정척사 사대부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집권 세력의 수준이 그러하다.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쇄국이 만든 우물안 개구리인데도 이들은 늘 조선계 일본인 출신 리더들을 깔보고 깎아내렸다는 것이다. 일제시대 때 태어나 교육받고 자라 해방 이후 네이션빌딩에 매진한, 어찌 보면 일본어가 모국어인 제국 출신 한국인 리더들이 있었다. 국가 건설과 산업화에 신화적인 공이 많았지만 386들은 늘 그들을 부정했다. 박정희가 됐든 박태준이 됐든 김대중이 됐든 얼마 전에 죽은 전두환과 노태우가 됐든 쇄국시대의 총아인 386들은 저 리더들이 원래 제국인이었으며 제국인다운 시야와 배포, 사고가 있었고 그걸 바탕으로 부강한 대한민국을 만들었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쇄국주의자들은 제국인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이제 그만 2차 쇄국시대가 낳은 괴물들은 사라져야 한다. 국가를 경영할 비전과 시야가 없는 이들은 그만 퇴장해야 하는데 새롭게 등장할 리더군과 엘리트군들에게 제국인의 시야, 감각, 배포가 있기를 바랄 뿐이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