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발생 시 고의 유무와 무관하게 경영자를 형사처벌하는 과잉입법의 유탄을 피하기 위해 기업들이 자구조치에 나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을 맞아 급팽창하는 플랫폼 노동시장에서 이런 기류가 가장 두드러진다. 유통·물류·택배회사들은 지정병원의 건강검진을 의무화해 기저질환자를 원천배제하려는 움직임이다. 신규 채용뿐 아니라 기존 직원들로도 불똥이 튀고 있다. 오래전의 병력을 이유로 숙련된 배달직에서 평생 안 해본 사무직으로 강제전환시킨 사례가 등장했다.
특히 전 세계 사망 1위 질병일 정도로 환자가 많은 심혈관계 질환자들이 직격탄을 맞는 모습이다. 고혈압 고지혈증 등의 심혈관질환 위험 근로자를 채용에서 배제하는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고령이나 가족력이 중요한 발병원인인 질환을 앓는 것도 서러운데 차별까지 감내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만 것이다.
중대재해법은 경영자들에게는 더한 공포의 대상이다. 사전 대처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은퇴하는 경영자도 적지 않다. 시행령이 나오고 고용노동부의 해설서까지 배포됐지만 안전·보건 의사결정자를 선임한 경우 회사대표가 처벌대상인지조차 불확실하다. 원·하청 관계에서 안전확보의 책임자가 누구인지, 재하청 시 책임범위는 어떻게 되는지 등 모호한 점투성이다. 근로자 부주의로 인한 사고 시 경영자의 책임여부도 불투명하다.
이런 혼란은 사업 위축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해외사업장이 많은 대형 건설사들은 이미 해외근무 직원들을 복귀시키고 외국인으로 대체 중이다. 해외 수주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한국에 대한 외국인 투자 매력을 약화시킬 것이란 미국 헤리티지재단의 우려도 나왔다.
최근 헌법재판소는 ‘경각심을 높일 목적이더라도 과도한 처벌은 안 된다’며 음주운전을 가중처벌하는 ‘윤창호법’에 위헌 결정을 내렸다. 중대재해법은 극심한 모호성까지 더해져 윤창호법보다 위헌성이 훨씬 크다. 누구를 위하는 법인지 알 수 없게 된 법의 시행을 보류하고 즉시 보완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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