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을 하기 전에 슬럼프였어요. 작품을 오래 쉬기도 했고, 살도 많이 찌고, '난 왜 안 될까' 고민하다가도, '그냥 이렇게 살까' 안주하고 싶고, 불안하고,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죠. 초심으로 돌아간 작품이었고, 절실함을 느꼈어요."
솔직하고, 유쾌하고, JTBC '너를 닮은 사람'의 서우재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김재영이었다. 김재영은 그 솔직함을 담아 인터뷰 시간 내내 '너를 닮은 사람'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지난 2일 종영했음에도 "아직도 작품 관련 영상을 찾아보고, 댓글을 읽고 있다"고 밝힌 김재영은 "퇴폐 섹시미가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좋은 말엔 귀가 열리는데, 기억하게 되는데, 이런 칭찬을 기사에 꼭 써달라"고 요청해 폭소케 했다.
'너를 닮은 사람'은 아내와 엄마라는 수식어를 버리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던 여자와 그와의 짧은 만남으로 자신의 인생에서 '조연'이 돼 버린 또 다른 여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KBS 2TV '비밀'을 쓴 유보라 작가의 대본에 대체 불가 존재감을 뽐내는 고현정,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리즈로 대세에 등극한 신현빈이 각각 주인공 정희주, 구해원 역으로 발탁돼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었다.
김재영이 연기한 서우재는 정희주, 구해원을 뒤흔드는 마성을 가진 남자다. 천재 조각가였던 아버지의 뒤를 따라 조소과에 진학했지만, 아버지와 같은 재능이 없어 늘 불안함을 느꼈고, 사랑받지 못해 방황했다. 구해원의 따뜻함과 그의 그림을 사랑하며 결혼까지 약속했지만, 이후 구해원에게 미술 레슨을 받기로 한 정희주와 만나면서 불륜을 택한다.
tvN '백일의 낭군'으로 주목받은 후 올리브 '은주의 방', SBS '시크릿 부티크', KBS 2TV '사랑은 뷰티풀 인생은 원더풀'까지 연이어 주연에 발탁됐던 김재영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거칠고 자유로운 영혼의 서우재를 선보이며 연기 도전에 나섰다. 서우재를 연기하기 위해 15kg을 감량하고, 작가들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세계관과 감성을 이해하려 했다는 김재영은 "(임현욱) 감독님이 저를 많이 예뻐해 주셨고, 고현정 선배를 포함해 모든 분들이 제가 몰입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다"면서 훈훈했던 촬영장 분위기를 전했다.
"매번 작품을 끝내고 나서는 슬럼프가 왔던 거 같아요. 연기도 소홀해지고, 불만도 많아지고. 우울증처럼 지내다 겁나니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고. 그때 이 작품의 대본을 봤고, '난 행복한가'를 많이 생각했어요. 자기만의 욕심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대본이었고, 제가 고민했던 부분과 일치해 다시 도전해보고 싶었죠."
모델을 하다가 배우로 자연스럽게 활동 영역을 넓혔고, 돋보이는 외모로 단숨에 주연 자리까지 꿰찼다. 김재영은 "소아비만이라 모델이 되기 위해 30kg을 감량한 것"이라며 "몸이 그때 몸을 기억해서 조금만 먹어도 10kg씩 찐다"고 말하거나, "바로 캐스팅이 된 게 아니라 2달 정도 미팅이 이어졌는데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다른 모델 출신 배우들은 잘되는데, 나만 뒤떨어지는 거 같아 조급했다" 등 솔직한 발언을 이어갔다.
"저의 솔직함을 감독님이 마음에 들어 하셨던 거 같다"면서 웃던 김재영은 "고현정 선배는 연기할 때 '네가 뭘 해도 다 받아주겠다'고 하셔서 든든함을 느꼈고, 신현빈 누나는 제가 2살 어린데도 극 중에 제가 오빠로 나오니 먼저 '말을 편히 하라'고 해주셨다"면서 진심을 다해 고마움을 전했다. 작품 속에서는 두 여자와 '애증(愛憎)'의 관계였지만, 현실 속에서는 '사랑(愛)'만 받는 존재였던 것.
우재는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지지해줬던 구해원을 버리고 정희주와 불륜을 택했고, 기억상실 후 돌아온 후 정희주가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자 애정을 강요하며 흑화된다. 정희주, 구해원 모두에게 비뚤어진 사랑을 보여준 서우재였다. 결국 비극적인 죽음으로 퇴장한 서우재에 대해 김재영은 "그나마 죽어서 사람들에게 동정을 받는 거 같다"면서 웃었다.
"우재는 결핍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해원을 사랑했다기보단 그가 주는 따뜻함이 좋고, 해원의 작품을 보고 좋은 영향을 받고, 그래서 그 (인연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던 거 같아요. 그 가운데 희주를 만나고, 해원에게 느끼지 못했던 모성애, 부유함, 우월감 등을 느끼면서 사랑과 행복이란 감정에 눈떠 위험한 결정을 내리고요."
'너를 닮은 사람'은 3% 안팎의 시청률을 유지하며 종영했지만, 넷플릭스에서는 국내 인기 콘텐츠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최근 배우들의 해외 활동이 늘어나는 걸 보며 "저도 영어공부를 해야겠다는 걸 느낀다"는 김재영은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나 완전히 망가지는 캐릭터도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넷플릭스에서 1위에 오른 걸 주변에서 캡처해서 보내주시더라고요. 저 역시 OTT로 많이 보고 있어서 요즘은 시청률만 놓고 이게 잘된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어요.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신 거 같아서 감사해요."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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