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식품이 1976년 세계 최초로 선보인 커피믹스는 혁신적인 발명품이었다. 봉지를 뜯어 뜨거운 물만 부으면 달콤한 커피 한 잔이 바로 완성됐다. 소비자들은 열광했다. 맥심으로 인스턴트 커피 시장을 평정한 동서식품의 전성시대는 영원할 것만 같았다.
위기는 2000년대 후반 찾아왔다. 스타벅스를 비롯한 커피전문점이 늘어나면서 소비자의 입맛이 변하기 시작했다. 달콤한 믹스커피 대신 씁쓸한 아메리카노가 대세로 자리잡았다. 커피믹스 매출이 줄고, 동서식품은 흔들렸다. 동서식품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인스턴트 원두커피라는 세상에 없던 새로운 제품 ‘카누’를 개발해 달라진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위기에서 탄생한 카누는 출시 10년 만에 누적 판매량 100억 개를 돌파하며 동서식품의 ‘제2 전성기’를 이끌고 있다.
동서식품은 50년 커피 제조 노하우와 기술력을 담아 카누를 개발했다. 커피의 맛과 향을 살리기 위해 기존 인스턴트 커피보다 낮은 온도와 압력으로 짧은 시간 내에 커피를 추출하는 저온다단계추출(LTMS) 방식을 사용해 원두 고유의 풍미를 살렸다. 카누에는 일반 인스턴트 커피보다 원두를 세 배 더 많이 넣었다. 원두도 콜롬비아, 과테말라, 코스타리카 등 유명 커피 원산지에서 수입한 최상급 원두를 썼다.
카누는 커피전문점 수준의 원두커피를 합리적인 가격에 언제 어디서든 간편하게 즐길 수 있다는 입소문이 나 빠르게 인기를 얻었다. 출시 첫해 3800만 개에 그쳤던 카누 판매량은 2년 만에 4억 여개로 급증했다. 2016년에는 처음으로 연간 판매량 10억 개를 돌파했다. 올해 판매량은 코로나19 악재에도 15억 개를 넘어설 전망이다. 10년간 누적 판매량은 100억 개를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카누 미니’는 소비자들이 만든 제품이다. 동서식품은 소비자 사이에서 “카누의 양이 많아 스틱 1개를 둘이서 나눠 먹거나 두 번에 나눠 타 마신다”는 반응이 나오자 120mL 종이컵 기준에 맞는 용량의 카누 미니를 개발해 출시했다.
동서식품 관계자는 “종이컵을 주로 사용하는 한국인 특유의 음용 습관을 고려해 일명 ‘코리안 사이즈’라고 불리는 종이컵 기준에 맞는 용량의 카누를 개발했다”며 “카누 미니는 지속적인 시장조사와 발 빠른 대응으로 탄생한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동서식품은 카페인에 민감하거나 임신 등으로 인해 카페인 섭취를 꺼리는 소비자를 위해 ‘카누 디카페인’도 개발했다. 카누 디카페인은 카페인 제거 공정을 거친 원두를 사용해 카페인 함량을 낮춘 제품이다. 카페인은 기존 제품보다 적게 들어갔지만 에스프레소 맛을 발현하는 커피 파우더에 미분쇄 원두를 코팅해 깊고 은은한 커피의 풍미는 그대로 살렸다.
카누 굿즈는 깔끔하고 모던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동서식품은 최신 트렌드를 탐색하고 전문 디자인 스튜디오와 협업해 제품을 디자인하는 등 매년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자 취향을 반영해 굿즈를 선보이고 있다. 굿즈의 품질 관리도 엄격하게 하고 있다. 소비자가 굿즈를 사용할 때 발생할 수 있는 파손과 상해 등 잠재적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품질 부서와 충분한 사전 협의를 거친다는 설명이다.
고은혁 동서식품 마케팅매니저는 “카누는 많은 소비자가 합리적인 가격으로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고품질 커피를 즐길 수 있도록 동서식품의 커피 기술력을 집약해 만든 인스턴트 원두커피”라며 “달라지는 소비자 취향을 반영해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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