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암호의 원리는 미국과 캐나다 과학자들이 밝혀냈지만, 현재 중국이 가장 앞서 있다. 스텔스 전투기와 전함 그리고 양자 레이더 원리도 미국에서 밝혀냈지만, 중국이 먼저 시제품 개발에 성공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퀀텀씨텍은 중국 정부의 지원으로 유럽에서 양자광학기술 박사학위를 취득한 판젠웨이 교수가 설립한 회사다. 그는 학회 만찬 때 자신의 성이 당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같다고 소개했다. 판 교수 연구그룹은 베이징에서 상하이까지 2000㎞에 달하는 양자암호통신망을 2017년 개통한 데 이어, 2018년 세계 최초의 양자통신위성 ‘묵자(墨子, Micius)호’를 이용해 중국~오스트리아 간 7600㎞를 양자암호통신으로 연결했다. 중국 양자통신위성의 이름이 된 춘추전국시대 평화주의자 묵자는 빛의 반사와 관련된 설을 주장하는 등 르네상스 시절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공학적 면모를 갖춘 천재였다.
과학기술을 아무리 평화적인 목적에 쓰자고 주장하더라도 살아남기 위한 경쟁 앞에서는 소용이 없다. 아르키메데스는 로마의 침략을 막기 위해 투석기, 기중기 등을 만들었다. 청동거울에 반사된 햇빛으로 로마군을 항로에서 벗어나게 하고, 오목거울처럼 햇빛을 로마 전함에 집중해 태워 버리기도 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에서 나온 질량·에너지 등가공식은 핵폭탄의 원리로 발전했다.
이러한 과학기술 경쟁은 극단적인 대립구조를 만들어 인류를 불안에 떨게 하기도 했다. 때론 전쟁 도구로 사용됐지만 인류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기도 했다. 핵에너지의 평화적 사용, 핵의학 기술, 인공위성을 이용한 위성위치확인 시스템(GPS)과 위성통신망 발달 등 과학기술은 전쟁과 평화라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이번 미국의 제재는 양자컴퓨터 기술이 군사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나왔다고 한다. 디지털컴퓨터로는 불가능한 계산을 양자컴퓨터가 해낼 것으로 기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슈퍼컴퓨터로는 엄두도 못 내는 계산 문제를 풀거나, 물질의 구조를 밝히고 새로운 분자를 설계해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심지어 난치병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절대통신보안으로 인권을 보장하고, 국가안보를 지킬 수도 있다. 양자컴퓨터와 양자암호 기술이 과연 우리가 기대하는 수준까지 발전할 수 있을지는 우리 과학자들의 의지에 달려 있다.
양자정보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키는 당사자 모두가 동료이다. 학술지와 학술대회를 통해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부디 미·중의 양자 경쟁이 전쟁의 도구가 아니라 오로지 인류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
김재완 고등과학원 부원장·교수 jaewan@kias.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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